트럼프의 도박 왜
러시아 스캔들로 사면초가
국내 지지기반 다질 카드로 중동 평화협정 돌파구 포석
아랍 극단적 행동 안할 수도
【 워싱턴=장도선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아랍권의 거센 반발과 우방국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글로벌 정세는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러시아 스캔들로 사면초가
국내 지지기반 다질 카드로 중동 평화협정 돌파구 포석
아랍 극단적 행동 안할 수도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 의회, 대법원, 총리 집무실이 예루살렘에 위치해 있음을 감안할 때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는 것은 "오래 전에 이뤄졌어야 할 일"이라며 자신의 결정을 옹호했다. 트럼프는 또 현재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주재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도록 지시하면서 대사관 이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 대사관 이전을 6개월 보류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 가운데 현재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두고 있는 나라는 없다.
아랍, 이슬람 국가들이 즉각 강력 반발했으며 미국의 우방국들마저 우려를 쏟아냈다. 특히 동예루살렘을 자신들의 미래 수도로 간주해온 팔레스타인의 마무드 아바스 대통령은 트럼프의 이날 선언은 미국의 중동 평화협상 "철수 선언"이라고 비난했다.
중동 정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개 국가 해법' 구상에 차질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데는 다양한 정치·외교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뮐러 특검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트럼프로선 국내 지지기반을 다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은 트럼프의 대통령선거 공약이었다.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관점에서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주 주지사와 달라스 제일침례교회 담임목사 로버트 제프리스 등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이날 성명을 내고 트럼프의 결정에 찬사를 보냈다. 미국에서 정치, 경제적 영향력이 큰 유대계도 트럼프의 결정을 지지했다. 하원 외교위원회의 민주당 다선의원인 엘리엇 엥겔(뉴욕주)은 트럼프의 결정이 "수십년의 치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은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과정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일종의 극약처방이라는 견해도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이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을 거부했음에도 이 지역의 평화정착은 20년 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똑같은 공식의 반복이 다른 결과 또는 더 나은 결과를 생산해낼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궁극적 해결을 중재하겠다고 공약해온 트럼프가 전임 미국 대통령들과 다른 모습을 보임으로써 팔레스타인을 압박해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 한다는 분석이다.
아랍 국가들의 실제 반발이 현재 우려만큼 거세지는 않을 것으로 계산했을 가능성도 있다.
사우디 국영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외교부 관리가 예루살렘 수도 인정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모든 무슬림들에 대한 도발적 행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두바이에서 활동하는 정치분석가 압둘칼레크 압둘라는 파이낸셜타임스에 "걸프 국가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트럼프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모든 문제 가운데 예루살렘은 우선순위 리스트의 아래에 위치해 있다"고 말했다. 지금 사우디와 UAE 등 중동지역 친미 국가들에 가장 중요한 이슈는 이란의 영향력 억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제럴드 세이브 에디터도 수십년간 지속된 팔레스타인 문제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아랍세계가 표면적으로는 크게 반발하겠지만 과거만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도박이 어떤 결과를 도출하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미국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아랍권의 관심과 열정이 되살아날 수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세력이 예루살렘 이슈를 중심으로 결집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jdsmh@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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