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시간도 차 빼기 위해 대리운전” vs. “팁 받기 위해 원래 업무 대신 딴 짓”
“3년간 임금 8억원 못받고 운전중 사고 땐 물어내야” 경비원들, 노동부에 신고
주민회 “업무소홀 책임져야”
“3년간 임금 8억원 못받고 운전중 사고 땐 물어내야” 경비원들, 노동부에 신고
주민회 “업무소홀 책임져야”
"경비아저씨 앞차 빼주세요"
지난 11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이 자신의 차량을 막고 있는 앞차를 빼달라고 경비실에 찾아왔다. A씨는 경비실 안에 있는 열쇠보관함에서 차키를 빼 다른 주민의 독일제 수입차를 직접 몰았다. A씨는 "먹고 자는 시간에도 주민이 찾아 온다"며 "휴식시간에 운전을 하지만 수당도 없고 사고라도 나면 자비로 모두 물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밀린 임금 못받았다" 고용부 신고, 3년간 8억 주장
이 아파트 '경비근무지침'에는 운전 업무가 없다. 그러나 경비원들은 지시를 받고 20년 이상 대리운전을 해왔다며 휴게 시간의 운전 업무에 대한 임금을 달라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사측인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원이 팁(수당)을 받기 위해 원래 업무 대신 '딴 짓'을 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14일 아파트 경비원 노동조합에 따르면 경비원 99명 중 50여명은 지난달 20일 대리운전을 거부하는 준법투쟁을 했으나 지금도 차량 운전대를 잡는다. 아파트 동마다 주차된 차량이 얽히고 설켜 출.퇴근 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지하주차장이 없어 주민들은 차량을 앞뒤로 2열 주차한다. 경비노조가 만든 관리 문서에는 경비원이 매일 운전해야 하는 차량이 660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경비원들은 새벽 등 휴식시간에 수년간 운전을 했지만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A씨는 "사측이 임금을 올리지 않기 위해 3년 전부터 휴식을 늘려 3시간에서 6시간이 됐지만 주민들은 모르고 있었다"며 "휴식 공간이 없어 경비실에 있으면 먹고, 자는 시간에도 대리운전을 요구했다"고 털어놨다. 관리실은 지난 8월 경비 휴게시간을 주민에게 알렸다. 경비원 40여명은 올 3월, 7월 임금체불을 이유로 사측을 신고했다고 3년간 미지급 임금은 약 8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경비원들은 신고 후 보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경비 B씨는 "사측이 최근 경비 8명을 한직으로 불리는 외곽초소로 발령했는데 신고자들이었다"며 "11월에는 아파트 경비원을 해고하고 용역업체로 전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최근 한 노무법인과 계약을 맺고 직접 고용 방식에서 용역업체에 위탁하는 전환 작업중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 경비원은 고용불안에 놓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경비원들은 전환을 반대하며 대리주차 거부에 들어갔고 사측은 주차관리요원 20여명을 투입해 주차 업무를 대신하도록 했으나 차량 이동 문제가 심각해 경비원들이 운전하자 주차요원을 해고했다는 것이다.
경비원이 운전 중 사고를 내면 비용을 모두 물어주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밝혔다. 사측이 운전을 업무로 인정하지 않아 보험가입이 안돼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사측은 운전을 시키기 위해 입사할 때부터 운전면허증 소지여부를 확인한다"며 "고급 외제차가 많아 사고가 나면 경비원이 수백만원씩 물어준다"고 전했다. 최근 5년간 이 아파트에서 운전 업무 중 사고로 50만원 이상 변제한 경비원이 13명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대리주차, 고유업무 영향 책임져야"
이같은 주장에 대해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원이 팁을 받기 위해 스스로 대리 주차를 했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노동청에 의견서를 보내 '발레파킹(대리운전)은 고유 업무가 아닌데 경비들은 발레파킹 때 손님에게 팁을 받는다'며 '발레파킹으로 고유 업무 수행에 직.간접적 영향을 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없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아파트 현장 조사를 한 서울강남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은 "입주민이 (차량을) 밀고 나갈 수 있는데 경비원에게 '나 나가야하니까 차 빼달라'고 말한 것을 보고 특이하다고 느꼈다"며 "경비원과 입주자대표회의간 합의가 되지 않아 내년 1월께 처분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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