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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장 선생님과 한국인의 재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29 15:30

수정 2017.12.29 15:30

홍익대 인근 원룸 빌딩을 소유한 마음씨 좋은 '장 선생님'과 제법 친하게 지낸 적이 있다.

장 선생님은 60대 초반의 남자로 원룸 수십개를 운영하면서 돈을 번다. 30대 시절에 부동산을 사서 현재까지 임대업 외엔 별다른 직업 없이 지내는 분이다.

몇 년 전 장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그의 수입을 추론해 봤을 때 최소 월 3천만원 정도는 버는 것 같았다. 당시 그가 소유한 빌딩을 구경하면서 월세를 얼마씩 받는지, 관리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등을 물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추론이 가능했다.


장 선생님의 외아들은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한 뒤 한국으로 들어와 홍대 인디 록 밴드에서 기타를 친다. 대중성 없는 밴드다. 장 선생님은 미국 유학까지 한 아들이 돈을 전혀 못 번다고 푸념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받는 풍족한 돈 덕분에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장 선생님도 아들에 대해 큰 불만은 없는 듯했다. 아들은 비록 돈을 벌지 못하지만 아버지에게 손주를 안겨드리는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다. 부자 관계는 매우 원만해 보였다. 아버지가 버는 돈의 힘 때문이었다.

장 선생님의 일과는 아주 느긋하다. 장 선생님은 구청 등에서 실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는 팝송 배우기 프로그램, 컴퓨터 강좌 등에 참여하면서 중년 은퇴자들과 교분을 쌓는다.

장 선생님은 요즘 부쩍 해외여행에 맛을 들였다. 지난해엔 한 달 넘게 남미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당시 한 해의 3분의 1 가량을 해외여행을 하는데 쓰고 있었다. 부러운 인생이다. 한국인 중 몇 퍼센트가 장 선생님과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을까.

▲ 재산의 의의
재산의 많고 적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돈이 얼마나 있는지 여부는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많은 재산, 그리고 그 재산에 기반한 '캐시 플로우'(현금 흐름)가 장 선생님과 같은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보통 사람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여유로운 삶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오래 전 언론에 입문해 사회부 기자로 경찰서를 돌아다닐 때였다. 당시 나는 단 돈 몇 만원 때문에 범죄행위들이 빈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과자 가게같은 곳에서 작은 물건을 여러 번 훔친 결과 전과 14범이 된 청년을 만나 그의 처지를 같이 안타까워한 적도 있었다. 절대적 빈곤은 사회생활을 채 시작하기도 전인 젊은이의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많았다.

이후 나는 돈에 대해 '쉽게' 혹은 '가볍게' 얘기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여유있는 자들이나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식의 얘기를 쉽게 한다. 현실은 냉혹하다.

각종 이념이나 사상으로 포장된 가치 있어 보이는 행위들도 실상 사익(돈)을 추구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또 흔히들 돈과 권력을 따로 떼어서 얘기하곤 하지만, 일반적으로 권력 역시 잠재적인 돈이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직장 생활을 하거나 사업을 한다. 돈, 그리고 그 돈들이 쌓여서 만든 재산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규정한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보통 사람들의 목표 중 하나는 돈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된다.

나는 각종 경제 관련 통계 가운데 매년 말에 나오는 '가계금융·복지조사'를 유독 좋아한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재산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빈부격차가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통계를 통해 나와 내 가족의 '상대적인' 경제적 지위도 얼추 파악할 수 있다.

이 통계가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으나 대략 한국인의 재산에 대한 감은 잡을 수 있다. '가계금융' 통계를 통해 한국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 한국인 평균 재산 3억원..재산순위 중간은 2억원에 못 미쳐
베테랑 은행원에게 던진 질문.

"한국 가구의 평균 재산이 어느 정도 될 것 같아요?"

"대략 5억, 6억 정도는 될 듯한데 애매하네요. 그래도 5억 정도는 될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다수의 한국 가구는 이 은행원의 대답이 불편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데이타를 살펴보자.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그리고 한국은행이 공동으로 실시한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2017년 3월말 현재 한국가구의 재산(순자산)은 3억1142만원으로 나타났다.

2016년(2억9918만원)보다 4.1% 늘어나 한국 가구의 평균재산이 3억원을 넘어섰다. 한국 가구는 평균적으로 자산을 3억8164억원, 부채를 7022억원 보유하고 있다. 가진 자산에서 은행 등에서 낸 빚을 빼야 순자산, 즉 내 재산이 된다.

한국 가구의 연간 소득은 5010만원이었다. 1년 전보다 소득이 2.6% 늘어나 처음으로 5천만원을 넘겼다. 하지만 비소비지출로 893만원이 나가기 때문에 처분가능소득은 4118만원 수준이었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처분가능소득의 절반 가량인 2천만원 정도를 매년 30년 동안 꾸준히 모으면 재산 6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6억이면 얼추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다. 평균적인 소득을 버는 사람이 30년간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모으면 서울에서 자력으로 아파트 한 채 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절반 이상의 가구는 3억원도 가지고 있지 않다. 평균은 실상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전체 금액을 더한 뒤 가구수로 나눈 평균값에선 상향편의가 일어난다는 얘기다. 따라서 보다 피부에 와 닿는 다른 개념의 평균, 즉 중앙값을 사용해야 보통 가구의 실상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중앙값은 100가구 중 재산 순위 중간인 50위에 해당하는 가구다. 한국가구 재산의 중앙값은 전년에 비해 4.4% 늘어난 1억8525만으로 2억원이 채 되지 않았다.

▲ 서울 가구 평균재산은 4억4천만원 가량..부산 사람들 재산은 서울의 60% 수준
한국의 중심인 서울은 비싼 도시다. 그런 만큼 한국인 평균적인 가구가 서울 생활을 영위하기는 만만치 않다.

서울은 비싼 도시인 만큼 가구당 평균재산도, 재산의 중위값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

서울 가구의 재산 평균은 4억3812만원으로 전국 평균에 비해 40% 이상 많다. 중앙값은 2억3916만원으로 전국 평균에 비해 29% 가량 높다. 서울 사람들(가구들)은 전국 어디보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부채도 1억원에 육박하는 9764만원을 보유하고 있다.

평균적인 가구소득은 서울이 5545만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11% 가량 더 높다. 서울 가구 소득의 중앙값는 4200만원으로 전국 중앙값(4040만원)보다 4% 정도만 높다.

즉 재산 격차와 비교할 경우 소득 격차는 크지 않은 것이다. 이는 오랜 기간 서울 부동산의 위세가 그 만큼 강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부동산은 한국인의 재산에서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한국 제2의 도시라는 부산 가구의 평균 재산은 2억6154만원으로 서울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중앙값은 1억7524만원으로 73% 수준이다. 한국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두드러지는 도시는 단연 서울인 것이다.

▲ 전체 가구수의 2/3는 재산이 3억원 미만..상위 10%가 재산의 42% 보유

한국 사회 평균 가구의 재산(순자산)이 3억원을 약간 넘는다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전체 가구의 2/3는 재산이 3억원에 못 미친다. 우선 재산 1억원이 안 되는 가구의 비중은 34% 정도다. 즉 우리 사회 가구 중 1/3 정도는 재산이 1억원이 안 된다. 재산이 '마이너스'인 가구의 비중은 3% 정도다.

재산이 1~2억원인 가구는 18.5%, 2~3억원인 가구는 13.6%다. 즉 3억원 미만 가구가 66%에 달하는 것이다. 3~4억원이 9.4%, 4~5억원이 6.8%, 5~6억원이 4.6%다. 재산 6억원 미만 가구가 전체 가구의 87%에 달하는 셈이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이 6억원이라고 할 때 순수하게 자기 돈만으로 서울 평균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가구는 10%를 약간 넘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재산이 10억원 이상인 가구의 비중은 5.1%다. 재산 10억원을 부자로 볼 수 있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20가구 중 한 가구 정도만이 10억이 넘는 재산을 갖고 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너무 많고 적은 사람은 너무 적다. 한국은 상위 10%, 즉 10분위 가구가 전체 재산의 42.1%를 점유한다. 재산 불평등을 나타내는 순자산 지니계수는 0.586으로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인 0.357을 훨씬 웃돈다. 즉 소득 불평등보다 재산 불평등 정도가 훨씬 심하다는 의미다. 우리는 재산을 쌓기 위해 소득을 모은다.

이 지점에서 보유세 등 재산에 매기는 세금을 높이고 근로 소득에 매기는 세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낮춰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선 상위 20%가 전체 재산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반면 전체 가구의 '절반'인 하위 50%가 보유한 재산은 11%에 불과하다.

▲ 장 선생님과 부동산 공화국

다시 상기해 보자. 한국 가구의 자산은 3억8164만원, 부채는 7022만원, 따라서 재산(순자산)은 3억1142만원이다.

그런데 한국인이 보유한 자산 중 부동산은 2억6635만원에 달한다. 자산 대비 70% 수준이다.

하지만 순자산, 즉 순수한 내 재산 대비 부동산 비중은 86%에 달한다. '부동산/재산'이 90%에 육박한다는 사실에서 부동산은 한국 가구가 가진 부의 대부분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부동산 가격 동향은 부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동산 가격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통계 데이타를 뽑아보면 특정한 해를 제외하고는 오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금 부동산으로 재산을 축적한 사람은 끊임없이 가격 방어 논리를 펴고 있으며, 재산이 별로 없는 사람은 부동산 가격이 빠져야 자신에게도 부자가 될 기회가 올 것으로 본다. 언제나 그렇듯 부동산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다. 부동산이 한국 가구가 가진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장 선생님은 편안한 인생 후반부를 보낼 수 있는 것도 젊은 시절 사 놓은 부동산 덕분이다. 홍대 인근 금싸라기땅에서 오래 전 매입한 부동산은 장 선생님 뿐만아니라 그 후손의 인생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신 물려받은 게 없거나 특별한 재능이 없는 보통 사람에게 '부의 축적'은 매우 어려운 문제가 돼 버렸다. 평범한 사람이 부동산 기득권들이 구축한 세계로 편입되는 일은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우리사회가 규정하는 노동의 상대적 가치는 이미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이다.


내년엔 성실한 보통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좀더 나아지기를 기원해 본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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