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글판 총 13번 대표작가
캘리그래피 작가이자 시인....美에서 한글 공연까지
멋글씨 예술가의 진화
캘리그래피 작가이자 시인....美에서 한글 공연까지
멋글씨 예술가의 진화
광화문 앞을 지날 때면 습관처럼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을 보게된다.
가슴떨리는 고백의 시부터, '힘내라' 응원의 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열망의 시까지 봄·여름·가을·겨울 1년에 네 번 바뀌는 글판은 어느새 시대의 글이 됐다.
올 겨울편은 '겨울 들판을 거닐며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허형만 詩 '겨울 들판에서')이다. 이 글 판에 숨결을 불어넣은 이가 바로 '글씨 예술가' 박병철 작가다.
7일 광화문 글판 앞에 선 작가는 "거추장스러운 것들과 불필요한 욕심들을 버리는 마음으로 썼던 글씨"라고 했다.
지난 2009년(겨울편) 동글동글한 필체로 한글의 현대적 감성을 드러낸 '눈송이 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문정희 시인의 겨울사랑 中)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던 박 작가는 지금까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시인이 풀꽃 中, 2012년 봄 편), '앞 강물, 뒷 강물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김소월의 가는 길)등 써내려간 광화문 글판의 대표작가다.
그의 멋글씨(캘리그래피)엔 철학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 담겨야 하죠. '사랑'을 쓸때는 사랑의 감정이 글자 어딘가엔 스며들어가야 하고, '꿈'을 쓸 때는 꿈이 새겨져야 하죠." 그의 아호 역시 '마음'이다. 글씨를 쓰는 일은 자신과 타인에게 위로와 공감이 돼야 한다. 광고디자이너였던 그가 멋글씨 작가로 전향하게 된 건 사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손편지로 달래면서였다. "글씨를 쓰는 일이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두번째 철학은 "그 마음이란 건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자작시나 짧은 글 속에 어려운 한자, 한자어 대신 '꽃', '꿈', '사람' 등 쉬운 우리말이 주로 사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 작가의 글꼴은 한글을 따뜻하고 정감있게 표현하기로 유명하다.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글꼴이 그 자신도 헤아릴 수 없이 풍부하다. 매년 숙련되지 않은 캘리그래피 작가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다. "매일매일 새로운 글꼴을 찾아 공부하지요. 버려진 나뭇가지로, 짜장면 먹을 때 쓴 나무젓가락으로, 솔방울로, 휴지로 매일매일 연구합니다."그러다 보니 한 번 쓰고는 미련없이 버리는 글꼴도 부지기수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한 번만 사용되고, 사라지는 글꼴도 많죠."
글씨에 감정을 불어넣는 일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그 자신 시인이 됐다.
'그대와 있으니 꽃이 보이지 않네 그 꽃 모두 그대가 되었네', '꽃보다 그대가 아름답다 그대가 꽃이다.' 그의 글들이다. '자연스럽게', '마음담은 글씨' 등의 그의 글을 모아 출간한 책들이다.
한글 손글씨에서 시작한 그의 영역은 최근엔 한글과 관련된 공연활동으로 확장됐다.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손바닥 만한 플라스틱 조형물, '꿈', '꽃' 등 글자들은 한글 퍼포먼스의 시작이자 원동력이다.
지난 2016년 서울시에서 인가된 (사)한글플래닛의 창립 멤버인 그는 1년에 한 번씩 미국 내 4~5개 대학을 돌며 입양아와 미국 현지인들을 상대로 '한글 파티'를 연다. 한글 자체가 문화공연의 소재인 셈이다. 그 자신이 직접 한글 마술을 하는 등 퍼포먼스에 나선다. "한글은 초성,중성,종성으로 입체적으로 이뤄져있죠. 풍성한 표현이 가능하죠. 외국사람들이 신기해 하고 재미있어 하는 부분이에요." 위로와 공감에서 시작한 손글씨 쓰기가 한글을 활용한 문화활동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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