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
황장엽 망명때 주중대사로 핵심 역할…1차 북핵위기때부터 대북현안 옆에서 지켜봐
황장엽 망명때 주중대사로 핵심 역할…1차 북핵위기때부터 대북현안 옆에서 지켜봐
때는 1997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지낸 황장엽 선생이 한국으로 망명했다.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알려진 최고위급 인사의 망명은 우리 정부는 물론 북한.중국 정부에도 충격을 안겼다. 황 선생이 문을 두드린 주중 한국대사관의 수장이 바로 정종욱 전 주중대사다.
"중국 정부는 꿈쩍하지 않았고 대사관 주변에는 전에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쫙 깔렸어요. 김정일 위원장이 '시체라도 좋으니 황 선생을 데려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도 하더군요."
정 전 대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황 선생은 한달여 대사관에 머물렀고 그의 신변 보호는 정 전 대사의 임무였다. 중국 외교부와의 조율도 측면지원했다. 정 전 대사는 자칫 국가 간 충돌로 번질 수 있었던 당시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제3대 주중대사를 지낸 정 전 대사는 학자 출신의 외교관이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대와 예일대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각각 취득한 뒤 약 20년간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했다.
김영삼(YS)정부가 출범한 1993년 초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시절 정 전 대사는 1차 북핵위기, 북.미 제네바 핵합의 등의 대형 대북 현안을 겪었다. 정 전 대사가 한반도 정세 전반에 대한 식견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갔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정 전 대사는 전했다.
"핵 문제로 전쟁이 코앞에 닥치는 위기를 겪은 후인 1994년 6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합의가 전격적으로 이뤄졌어요. 남북관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기회였죠. 뜻밖에도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지는 바람에 무산됐지만 말이에요." 정 전 대사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당시를 표현했다.
정 전 대사는 이후 외무부 본부대사를 거쳐 주중대사로 임명됐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주중대사로서의 2년4개월은 '본격적인 현장실습'이었다. 학자로서 연구를 통해, 관료로서 정책을 통해 살폈던 중국을 속속들이 알아가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주중대사를 끝으로 정 전 대사는 학계로 돌아왔다. 서울대와 아주대, 동아대 등을 거쳐 현재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을 맡고 있다.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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