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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명의 사냥꾼이 산속에 있다. 각자 맡은 길목을 지켜 사슴을 잡기 위해서다. 변수는 때마침 지나가는 토끼다. 누군가 약속된 위치를 이탈해 토끼를 잡는다면 포위망은 뚫리고 사슴을 놓치게 된다. 자신은 배를 불리겠지만 다른 사냥꾼은 굶는다. 반면 합세해 사슴을 사냥하면 토끼보다 얻는 이득이 크다. '내가 토끼를 잡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토끼를 잡을 것'이란 불신을 극복하는 게 관건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의 저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나온 '사슴사냥 게임'이다. 다양한 경우의 수에서 힘을 모아 사슴을 사냥하는 것이 최고의 효용을 가져다준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즉, 서로를 신뢰하고 협력하면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는 게 요체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사회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사슴보다 토끼를 쫓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동차 업계가 대표적이다. 토종 기업 현대차의 임금단체협상이 장기화되면서 노조 창립 30년 만에 처음으로 해를 넘겼다. 이도 모자라 연초부터 파업으로 얼룩져 협상은 꼬여만 가는 양상이다. 국내 자동차산업이 최악으로 치닫는 작금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미국은 자동차 비관세 철폐요구 등 자유무역협정(FTA)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고, 원화강세.엔화약세로 숙적인 일본 자동차 브랜드의 가격경쟁력은 이미 한국을 추월했다. 실제 현대차의 지난해 판매실적은 전년 대비 30만대 이상 급감해 영업이익률 5% 방어도 장담하기 힘들 만큼 악전고투 중이다. 더구나 올해는 미국과 중국 등 주력 시장의 수요 정체 전망으로 자칫 역성장이 우려되는 한 해다. 노조리스크까지 고조되고 있으니 한마디로 사면초가다.
일본은 사뭇 대조적이다. 춘투 예열에 나선 자동차총련은 올해 기본급 인상폭(베이스업)을 3000엔으로 잡았다. 정부가 소비 진작을 위해 기업에 높은 임금인상을 강하게 주문하는데도 정작 노동단체는 절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국보다 연봉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다. 잔업, 특근 등을 차치하고 도요타의 평균연봉은 9000만원대 초반으로 현대차보다 낮다. 1960년대 이후 60년 넘게 무파업 행진도 이어가고 있다. 일본은 노사가 하나로 똘똘 뭉쳐 사슴사냥에 나섰다면, 한국은 당장 눈에 보이는 토끼를 잡는 데 혈안이 된 형국이다.
사슴사냥 게임과 상반된 게임이론이 죄수의 딜레마이다. 상대방과 협력하든 배반하든 무조건 배반하는 게 이득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노조가 유독 강한 분야다. 하지만 실적, 경영환경 등 어느 하나 녹록한 게 없고 다가올 위기는 쓰나미 같은데 그 앞에서도 분열의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자동차업체들이 오죽 답답하면 2년치 임협을 한꺼번에 잠정합의한 현대중공업을 부러워할까. 적대적이고 투쟁적인 낡은 틀의 노사관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사슴은 고사하고 토끼도 잡기 어렵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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