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탐정 합법화..."부족한 검경 인력 보완" vs. "사생활 침해 우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10 16:10

수정 2018.01.10 16:10

가짜상품 유통업자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민간조사원(사설탐정) D씨가 거래 현장을 촬영한 사진.
가짜상품 유통업자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민간조사원(사설탐정) D씨가 거래 현장을 촬영한 사진.
#. 9억여원의 사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민간조사원(사설탐정) A씨. 피해자들이 경찰에 수사 의뢰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자 A씨를 찾아온 것이다. 피해자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A씨는 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수배자를 찾는다. 12일 만에 결정적 단서를 잡은 A씨는 이내 경찰에 신고해 수배자를 검거하게 만든다.

#. 사설탐정 활동이 합법인 일본. 의뢰자로부터 배우자의 불륜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요구를 받은 B씨가 업무를 개시한다. 조사를 하다보니 배우자의 불륜과 더불어 의뢰자의 개인적인 비밀까지도 알게 됐다. 빌미를 잡힌 의뢰자는 B씨의 금품 요구에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탐정제도 관련 법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공인탐정법안은 국회 '단골손님'이다.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국회에 발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20대 국회에선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이 지난해 7월 '공인탐정 및 공인탐정업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반복되는 발의에 힘을 더한 건 동국대학교다. 동국대는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탐정(PIA)법무학' 석사학위과정을 개설하고 올해 1학기부터 신입생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교육과정은 탐정체계론, 탐정과 법, 미아·가출·실종자 사례연구, 해외탐정사례 연구 등으로 구성됐다. 대한민간조사협회는 이같은 동국대의 행보에 반색했지만, 대한변호사협회는 국민의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며 반기를 들었다.

■공권력 닿지 못하는 곳에 탐정이 도움 줄 수 있어
하금석 대한민간조사협회 회장은 탐정업무에 대한 수요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종, 미아, 수배, 공익신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설탐정의 역할을 필요로 하고 있다"며 "공권력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국민의 권익보호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공인탐정이 제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 회장은 개인 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탐정을 필요로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한국에 합법적인 탐정이 없다보니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에서 외국 탐정을 고용해 정보를 얻는다"며 "국내에서 필요한 정보를 해외에서 얻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외국 탐정을 통해서 조사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탐정업무가 불법인 상태에선 피해를 입는 의뢰인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에서 탐정업을 영위하고 있는 C씨는 "무작위하게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사생활 침해 피해를 겪는 사례가 많다"며 "업무 범위가 정해지지 않아 불법적인 경로로 개인정보가 유출되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지금 같은 상황에선 경찰과 변호사로부터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찾아오기 힘들다"며 "차라리 합법화 시켜서 허용 가능한 업무의 테두리를 정해준다면 탐정업무가 바람직한 차원에서 이뤄질 거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경찰과 검찰로 충분…결국 퇴직 검·경 수사관 위한 법
대한변호사협회는 탐정업무 합법화로 얻는 이익보다 사생활 침해로 인한 피해가 더 클 것이라 주장한다. 이율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는 "지금도 사설탐정들로 인한 사생활 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합법화되면 그들이 내놓고 뒷조사하게 되는 것"이라며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쪽으로 남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기관이 아닌 민간인의 민간인에 대한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국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는 일본 사례를 들었다. 이 공보이사는 "일본의 변호사는 3만9000명, 탐정은 6만명으로 탐정이 변호사보다 더 많다"며 "탐정활동의 불·탈법과 합법의 경계가 모호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논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탐정업무가 필요한 부분은 경찰과 검찰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공보이사는 "공인탐정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경찰이나 검찰 공무원이 수사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공인탐정은 도리어 경찰과 검찰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인탐정 허용 시 '전관비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이 공보이사는 "탐정업무가 합법화됐을 때 이 쪽에 진출하려는 많은 분들이 전직 경찰과 검찰의 수사관들"이라며 "이들은 과거 몸담았던 조직과의 관계를 통해 국가 관리정보에 접근할 여지가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ethica@fnnews.com 남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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