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지금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인한 충격과 분노 속에 살고 있다. 성폭력 고발 캠페인인 미투운동은 법조계를 시작으로 연예계, 교육계, 정치계 등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들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우려가 끊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들은 지금도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 하루하루 힘겨운 숨을 내쉬고 있을지 모른다.
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지애 교수는 6일 "성 관련 문제에 대한 트라우마는 일상생활 중에는 떠올리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며 지낼 지라도, 비슷한 상황을 목격하거나 관련 뉴스를 접하는 등 당시 기억을 떠올릴 만한 상황이 닥치면 다시금 그때의 상황이나 감정이 깊숙한 곳에서부터 되살아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호전되는데 오랜 기간이 걸릴 뿐더러 완벽히 치유되기도 어렵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해결을 위해 나서야한다는 것이다.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질 수도
성 관련 문제를 겪은 사람들의 경우 근심, 걱정, 불안, 초조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보통은 트라우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게 된다. 그러나 자연회복이 되지 않고 증상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 개인이 스트레스 상황을 이겨낼 힘이 약화되어 있는 경우라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 있다.
특히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은 다른 기억과는 달리 온전하게 남아있기 보다는 왜곡, 축소 혹은 확대된 단편의 기억으로 조각조각 남아있게 된다. 잘 소화되지 않은 트라우마 기억에 갇혀 있을 경우 감정 회피, 분노와 피해의식, 수치심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만약 이런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는 우울증뿐만 아니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판단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개 성 관련 트라우마는 한 개인에게 엄청난 고통이기 때문에 스스로 치유되기 보다는 만성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윤 교수는 "심하게는 공황발작이나 환청 등의 지각 이상이나 공격성 및 충동조절 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며 "고통스러운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 알코올에 의존하거나 약물을 복용하는 등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가족과 전문의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치료와 예방, 마음가짐이 최우선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성 관련 문제의 피해자들은 사건이 발단된 것 자체가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을 하거나, 피해사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혼자 앓고 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안정을 찾기 위한 이러한 회피는 결국 회복을 막게 되고, 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의 가장 큰 방해요인이다.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알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윤 교수는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낙인찍힌 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두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지속적인 회피는 악몽 같은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고통이 심할 것"이라며 "미투운동 등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동조, 공감 등의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본인 스스로가 긴 터널을 헤쳐 나오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당사자가 경험한 사건과 그 여파에 대해 어떤 부분에서 불안해하고 혼란스러워 하는지를 파악하고, 어떤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또 해당 기억에 대해 공포를 덜 느낄 수 있도록 부정적인 느낌과 생각을 조절해나가고 문제 행동을 바꿔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가족이나 친구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당사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공감해주고,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취미활동이나 신체활동을 함께 즐김으로서 조금씩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