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체벨레(DW) 등 유럽 매체들에 따르면 22일(이하 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모인 EU 정상들은 이번 사건의 책임이 러시아에 있다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기로 했다. EU 정상회의도 이날 성명을 내고 "우리는 이번 사건의 배후가 러시아 정부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 외에 다른 해명이 불가능하다는 영국 정부의 판단에 동의한다"며 "우리는 모두의 안보를 위협하는 막대한 위협에 맞서 영국과 전폭적인 연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역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번 사건이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브뤼셀에 도착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러시아가 영국을 향해 뻔뻔하고 무모한 공격을 꾸몄다"며 "이는 과거 러시아가 유럽과 이웃국가들에게 자행했던 공격적인 행위의 연장이다"고 성토했다. 메이 총리는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3자 회담을 열고 이번 사건과 관련해 양국의 지지를 얻어냈다.
EU측은 일단 외교적으로 러시아를 압박할 계획이다.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DW를 통해 모스크바에 파견한 EU 대사를 일시적으로 송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와 폴란드, 발틱 3개국을 비롯한 최소 10개 EU 회원국들이 영국처럼 자국 내 러시아 외교관 추방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4일 런던 근교 솔즈베리에서는 과거 러시아에서 영국의 이중간첩으로 활동했던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이 러시아의 화학무기로 추정되는 신경가스에 노출되어 중태에 빠졌다. 러시아는 지난 2006년에도 런던에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소속으로 러시아 정부를 비방하다 영국으로 망명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를 방사능 물질로 암살한 전력이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러시아가 지정된 기한까지 해명을 내놓지 않자 14일 영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하고 자산 동결을 포함한 러시아 제재에 들어갔다. 러시아 역시 17일부로 자국 내 영국 외교관 23명을 추방했다.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영국의 조치를 따라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익명의 프랑스 관계자는 "특정 국가들이 다른 유럽 국가들과 합의에 따라 조치를 취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소식통은 "어떤 국가도 먼저 나서길 원하지는 않는다"며 "집단행동이 따로 하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모든 EU 국가들이 영국 편은 아니다. 러시아와 가까운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22일 브뤼셀에 모인 EU 정상들에게 "우리가 영국 및 영국인들과 연대를 표현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이번 사건에 매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DW는 이외에도 슬로바키아, 헝가리같은 동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규탄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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