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원직은 정책금리인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일을 하는 자리다. 금통위원이 되면 재정정책과 함께 경제정책의 두 축 가운데 하나인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금통위원이 되면 노련한 경제전문가, 그리고 사회 명망가로 대접 받는다. 이 자리를 탐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금통위원 자리가 비면 남대문 한국은행에서 광화문까지 사람들이 줄을 선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금통위원은 3억 2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 금통위 의장인 한은 총재는 3억 5000만원에 약간 못 미치는 연봉을 수령한다. 아무튼 우리 사회의 ‘꽃 보직’으로 알려져 있는 금통위원 자리는 누구나 쉽게 갈 수 없다.
이번 주 은행연합회가 JP모간 서울지점의 임지원 이코노미스트를 금통위원으로 지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금통위원 인사를 둘러싸고 각종 입방아가 나돌았다.
■ 국내 금융업계, 외국계은행 애널리스트 출신 금통위원 ‘부정적 시선’ 많아
JP모간에서 한국경제 분석을 담당하는 임지원 이코노미스트가 금통위원이 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대학 교수, 전직 경제관료, 국책 연구기관 출신 등이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금융시장, 그것도 외국계은행 쪽에서 금통위원이 온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귀를 의심했다.
국내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엔 외국계은행에서 오랜 기간 일한 임 이코노미스트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금융업계에 30년 가량 몸 담고 있는 A씨는 “외국계 IB(투자은행) 쪽에서 굳이 금통위원을 뽑아야 했나 싶다”면서 “추천받은 분이 외국계에서만 주로 일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각 자체가 외국인 투자자 편향적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서울지점에서 일하면서 외국계 본부에 한국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을 소개했던 사람”이라며 “특히 한국은행법 상 외국인은 금통위원을 못 하게 돼 있다. 이 분이 외국인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이 분에 대해 주변에 좀 물어봤으면 금통위원 자리를 주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권사에서 20년 넘게 애널리스트로 일했던 B씨도 외국계은행 출신 금통위원 선임을 비판했다. B씨는 현재 펀드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B씨는 “나도 오랜 기간 애널리스트로 일했지만, 외국계은행 지점 출신 애널리스트를 금통위원으로 뽑는다는 게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서 “금통위원 인사를 이렇게 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이 분이 금통위원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것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일을 했기 때문으로 본다. 그 쪽의 높은 분이 추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실 금통위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선 정부와의 연이 중요한 경우가 많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엔 정권 인수위 경제분과나 정부와 관계된 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대거 금통위원으로 오곤 했다. 이러다보니 이번에도 이같은 관점에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자산운용사의 C 펀드매니저는 “임지원 이코노미스트가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여한 게 컸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제기구도 아닌 일개 외국계 지점 출신이 금통위원이 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내 금융사 출신 중에도 뛰어난 사람이 많았다. 굳이 외국계 지점 출신에게 그런 자리를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국내 금융사 관계자들 사이엔 임지원 이코노미스트의 금통위원 선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상당히 많았다. 특히 정부 쪽에서 억지로 ‘여성’ 금통위원을 한 명 들이려고 하다 보니,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식의 비판도 많았다.
증권사에서 25년간 근무하고 현재 IB 업무를 하고 있는 D씨는 “외국계은행 서울지점에서 외국인 투자자를 위해 국내 당국 동향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분이 금통위원을 하는 것은 이해상충의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 외국계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매방향에 맞춰진 경우들이 많았다”면서 “금통위원 할 만한 괜찮은 사람들은 주변에 널렸는데, 왜 이런 인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비판에 대한 비판
하지만 외국계은행 출신 금통위원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면서 이를 재비판하기도 한다.
외국계은행에서 오랜 기간 일하고 있는 E씨는 “외국계 출신이어서 금통위원을 하면 안 된다는 시각은 편협하다”면서 “이 분은 금융시장에 20년 계셨다. 나름대로 긍정적인 인사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임 이코노미스트는 정부나 한은과 많은 일을 하기도 했으며, 포럼 등에서도 열심히 활약한 분”이라며 “해외 투자자들과 자주 만나고 얘기한 것도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 국내 증권사 분석가들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없다. 이러다 보니 시기하는 시선이 작용하는 것으로 본다. 임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며, (특정 성향으로 경도된) 특별한 색깔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업계 내에서도 외국계에 오랜 기간 몸을 담은 게 반드시 단점이라고 할 수 없다는 평가가 보인다. 또 외국계 출신 여부를 떠나 고리타분한 교수 출신보다 나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국내 증권사의 F관계자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다가 금융계로 와도 실물 금융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사실 교수 같은 사람이 더 나은 것도 아니며, 오히려 백면서생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지금까지 평판이 어땠는지, 자기가 맡은 분야 일을 잘 해 왔는지가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면서 “이 분도 나름 현장에서 열심히 경제를 분석해 왔으니 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또 여성 금통위원이 하나 있는 것도 괜찮을 것같다”고 덧붙였다.
■ 금통위원, 과연 추천기관이 추천했을까
한국은행 총재와 부총재는 당연직 금통위원이 된다. 나머지 5명은 추천기관에서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회 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장, 전국은행연합회장에게 각 1명씩 금통위원 추천권한이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청와대나 정부와 관련된 힘 있는 사람이 결정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은이 추천기관에 공문을 발송하면 추천기관이 추천을 한 뒤 정부의 인사기관에서 대통령에게 금통위원 임명을 요청하는 구조지만, 사실상 이 구조가 잘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 2011년 9월 국정감사 당시 한 야당 의원이 당시 상공회의소 손경식 회장을 불러 “왜 자꾸 금통위원 자리를 비워두느냐”고 했을 때 손 회장은 공공연한 비밀을 세상에 알린 바 있다. 그 당시 손 회장은 “청와대 의견을 아직 기다리고...”라면서 말을 흐렸다. 그 때 금통위원 장기공석이 이어지던 상황이었지만, 상공회의소의 잘못은 아니었던 것이다.
임지원 이코노미스트는 오는 12일 임기가 끝나는 함준호 금통위원의 후임이다. 함 위원은 은행연합회 추천으로 금통위원이 됐다.
■ 이성남 vs 임지원
외국계 금융기관에 몸 담았던 ‘여성’이 처음 금통위원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금통위원이란 자리를 놓고 남성·여성을 분간하는 건 좋은 접근 태도도 아니다. 다만 외국계은행 출신에다 여성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에 임 이코노미스트는 이성남 전 금통위원과 비교된다.
이성남 전 금통위원은 2004년 4월부터 2008년 3월까지 금통위원으로 재직했다. 남자 금통위원들을 ‘남학생’이라고 부르곤 했다.
이성남 전 위원은 1987년부터 1998년까지 10년 넘게 씨티은행 재정담당 수석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는 여행사, 금융감독원 등에서 일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금통위원이 됐다. 금통위원을 지낸 뒤엔 국회의원이 돼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을 역임했다.
임지원 이코노미스트는 1999년부터 JP모간 서울지점에서 이코노미스트로 계속 일하고 있다. 1964년생으로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임 이코노미스트는 4월12일 금통위 이후 “7월 금리인상 전망을 유지하지만 한은이 예상보다 길게 금리 동결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상당히 높은 정치적 불확실성과 정책 이벤트를 감안할 때 그렇다. 이주열 총재의 입장은 2월 회의 때보다 약간 덜 호키시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썼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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