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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조동철 금통위원 강의 "인플레이션과 금리, 그리고 물가안정목표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09 15:00

수정 2018.05.09 15:00

다음은 조동철 금융통화위원의 언론 대상 강연 내용이다.


1. 인플레이션과 금리

주지하다시피, 금리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보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관찰하는 금리를 ‘명목금리’라고 칭하고, 이를 인플레이션에 대한 보상과 그 부분을 차감한 ‘실질금리’의 합으로 이해합니다. 즉, ‘명목금리≡실질금리+인플레이션’ 혹은 ‘실질금리≡명목금리-인플레이션’의 항등식이 성립합니다. 저의 작년 기자간담회 모두발언이 우리나라의 자연 실질금리가 낮아져 왔다는 점을 설명했다면, 오늘은 여기에 더하여 인플레이션의 하락이 명목금리를 더욱 빠르게 하락시켜 왔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림 1]은 우리나라의 10년물 국채금리가 2000년대 초반 7% 내외에서 최근 2%대까지 하락한데에는 실질금리의 하락 못지않게 인플레이션의 하락(음영처리 된 부분)이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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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보다 정확한 의미에서, 현재 명목금리에 반영되는 인플레이션은 과거에 실현된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플레이션입니다. 금융거래를 하는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기대 수준을 직접 관찰할 수 없어 많은 연구자들이 실현된 인플레이션을 기대인플레이션의 대용변수로 사용합니다만, 개념상 완벽한 측정방식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한국은행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기대인플레이션에 대한 설문조사를 수행하고 있는데, 그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은 최근까지 2%대 중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그림 2] 참조). 이 정도의 인플레이션 기대를 보유하고 있는 일반인들 입장에서 볼 때, 2%대까지 하락한 장기금리는 실질금리가 0% 내외에 불과한 ‘초저금리’로 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가급적 돈을 빌려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여타 기관에서도 인플레이션 기대에 대한 다양한 설문조사를 수행하고 있는데, 그 결과들도 최근에는 대체로 2.0~2.5%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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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금리가 결정되는 채권시장 분위기는 일반인들의 기대와는 사뭇 달라 보입니다. 선진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실현된 인플레이션을 사후적으로 보상해 주는 물가연동국채가 우리나라 채권시장에서도 거래됩니다. 인플레이션 위험이 헤지되어 있는 물가연동국채 금리는 대체로 채권시장에서 인식하는 실질금리를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되며, 따라서 일반국채 금리와 물가연동국채 금리의 차이는 채권시장이 실제 가격에 반영하는 ‘기대인플레이션’(혹은 손익분기 인플레이션)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우리나라의 물가연동국채 시장이 선진국에서 만큼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이 시장에서 추출된 정보들이 지표로서의 대표성이나 신뢰성에 상당한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채권시장에서의 기대가 투자자의 금전적 이해득실을 의미하는 시장가격에 반영되어 표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설문조사에 비해 인플레이션 전망에 대한 추가적 고민이 포함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림 2]는 채권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국채금리-물가연동국채금리)가 2012년까지만 해도 당시 물가안정목표인 3%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만, 2013~2014년의 급락기를 거쳐 2015년 이후에는 1%를 하회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일반인들과 달리 이처럼 낮은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고 있는 채권시장 참여자들에게는 2%대의 명목금리도 적절한 실질수익률을 제공하는 ‘정상적인 금리’로 평가될 수 있으며, 따라서 채권을 매입할(혹은 돈을 빌려줄) 합리적 이유가 존재합니다.

이처럼 금리수준에 대한 평가는 각자 예상하는 미래의 인플레이션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 편차가 확대되어 있는 최근의 현상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도 일반인의 인플레이션 기대는 실제 인플레이션을 상회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채권시장의 기대인플레이션은 실제 인플레이션을 하회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만, 두 지표의 격차가 최근처럼 확대되어 수년간 지속된 적은 없었습니다. 일반인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은 실제 인플레이션 변화에 상대적으로 둔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채권시장에서 투자수익을 고민하는 투자자들은 최근의 인플레이션 하락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인플레이션 하락의 원인

그렇다면 2013년 이후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이 크게 낮아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에 대해 합의된 결론은 없습니다만, 몇 가지 가설들은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세계적인 低인플레이션의 영향입니다. 틀림없이 우리 경제는 개방되어 있으며, 따라서 성장, 인플레이션, 금리 등 모든 주요 거시경제 변수들이 여타 경제와 상당히 동조화되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와 미국의 장기금리를 비교한 [그림 3A]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2015년 이후 우리나라 금리는 변화 방향뿐 아니라 수준까지도 미국의 금리를 상당히 추종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거시경제 변수들은 거의 전적으로 미국시장 상황에 의해 결정되고, 국내 요인들의 영향은 미미해 보이기도 합니다.

[전문] 조동철 금통위원 강의 "인플레이션과 금리, 그리고 물가안정목표제"
[전문] 조동철 금통위원 강의 "인플레이션과 금리, 그리고 물가안정목표제"


그러나 조금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른 측면이 눈에 띕니다. 과거에도 금리가 동조화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불과 5~6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금리는 미국보다 상당히 높았습니다. 이러한 금리격차가 사라지게 된 원인은 앞에서 설명 드린 물가연동국채 금리를 통해 개략적으로나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림 3B]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와 미국의 물가연동국채 (실질)금리가 어느 정도의 격차를 유지하면서 밀접하게 동조화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실물 경기순환이 글로벌 요인에 크게 영향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반면, [그림 3C]는 채권시장에서의 기대인플레이션(손익분기 인플레이션)이 동조화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특히 2% 내외에 안정되어 있는 미국의 기대인플레이션에 비해 우리나라의 기대인플레이션은 2013~2014년을 전후하여 급락하면서 미국과의 명목금리 격차를 사라지게 만든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2013년 이후의 인플레이션(특히 채권금리에 반영된 기대인플레이션) 하락의 원인을 세계적 低인플레이션에만 돌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두 번째 가설은 인구고령화와 생산성 정체 등으로 대변되는 구조적 요인의 영향입니다. 다분히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연상시키는 가설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실물경제의 구조적 요인은 지난 10~20년간 지속되었던 현상으로, 그 영향이 2013~2014년에 갑자기 나타나야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이론적으로도, 고령화와 생산성 정체는 실질 중립금리를 하락시키는 요인일 수는 있어도 인플레이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이해되기는 어렵습니다. 만일 그와 같은 현상이 관찰된다면, 아마도 그것은 통화정책이라는 간접경로를 경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실물경제의 구조적 요인에 의해 잠재성장률과 자연 실질금리가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통화정책을 과거의 명목금리 수준과 비교하여 수행할 경우, 이는 ‘의도하지 않은 긴축기조’를 형성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작년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강조하고자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2013년 이후의 인플레이션 하락이 통화정책의 결과라는 세 번째 가설로 연결됩니다. 표준적인 경제이론에 의하면, 통화당국이 거시경제를 효과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인플레이션 변동보다 더 큰 폭으로 조정해야 합니다(학술적으로 표현하자면, Taylor Rule의 인플레이션 갭에 대한 계수가 1보다 커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통화당국은 경기하락과 함께 (기대)인플레이션이 하락할 때 기준금리를 인하하여 대응합니다만, 기준금리 인하 폭이 (기대)인플레이션 하락 폭보다 작을 경우에는 명목금리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실질 기준금리가 오히려 상승하여 긴축적인 정책기조가 형성되고, 그 결과 (기대)인플레이션이 더욱 하락하는 악순환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림 4]는 근원물가 상승률로 대표되는 기조적 인플레이션이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물가안정목표 수준을 하회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2012년 하반기 이후에는 목표 수준으로부터의 괴리가 크게 확대되었습니다만, 기준금리는 여전히 근원물가 상승률을 상당 폭 상회하는 수준에 머무름에 따라 실질 기준금리(=기준금리-근원물가상승률)가 높아지면서 긴축적 통화정책이 형성되었습니다. 즉, 인플레이션에 대한 최초의 충격은 세계적 경기침체와 같은 외부적 요인일 수 있겠습니다만, 그와 같은 충격이 우리 경제의 인플레이션을 기조적으로 하락시킨 데에는 긴축적 통화정책이 자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단기적인 인플레이션 등락이 비통화적 요인에 의해 촉발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 인플레이션 기조는 결국 통화정책에 의해 결정된다는 경제이론에 부합하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2015년 말에는 2016~2018년의 물가안정목표를 이전의 3%에서 2%로 하향조정하여, 낮아진 인플레이션을 과거 수준으로 복원시키지 않을 것임을 공식화하였습니다.

[전문] 조동철 금통위원 강의 "인플레이션과 금리, 그리고 물가안정목표제"

이러한 통화정책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서는 인플레이션 이외에 금융안정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실제로 2013년 당시 통화정책과 관련된 논의에서는, 낮은 인플레이션보다 Taper Tantrum에 따른 자본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자본유출 가능성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준금리가 미국의 기준금리보다 상당히 높아야 하며, 따라서 당시의 2%대 기준금리에는 추가 인하의 여력이 많지 않으므로 그 여력은 가급적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2013년 5월 이후에는 기준금리가 2.5% 수준에서 동결되어 1년 이상 유지되었으며, 디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기 시작한 2014년 중반 이후에 이르러 기준금리가 인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3. 기대인플레이션 안정(Anchoring)을 위한 통화정책

우리 경제는 수십 년에 걸쳐 인플레이션을 하향 안정화시키는 데에 성공해 왔습니다. 그 결과 2013년 이후 우리의 인플레이션은 선진경제권의 공통 목표 수준인 2%를 지속적으로 하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플레이션은 낮으면 낮을수록 바람직한 것일까요?

‘적정’ 인플레이션에 대한 학계에서의 논의는 역사도 길고 논점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낮아진 최근에는 적정 혹은 목표 인플레이션 수준에 대한 논의가 통화정책 공간(Monetary Policy Space)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집중 조명되고 있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통화당국은 기준금리를 0% 이하로 설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른바 ‘제로금리하한’(Zero Lower Bound)입니다. 반대로, 단기 기준금리를 장기 시장금리보다 높은 수준으로 설정하여 수익률곡선을 역전시키는 통화정책도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일반적으로 기준금리는 0%와 장기금리 수준 사이에서 운용되며, 따라서 (기대)인플레이션 하락에 의해 장기금리가 하락할수록 통화당국의 통상적 기준금리 운용 공간은 축소됩니다. 이는 예상하지 못한 부정적 충격이 발생할 때, 신축적인 기준금리 조정을 통해 충격을 완충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듦을 의미합니다. 장기간의 디플레이션에 의해 이미 기준금리가 0%로 하락해 있었던 일본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강타하였을 때에도 통화당국이 대응할 여지가 별로 없었으며, 결국 2009년 성장률이 위기 진원지였던 미국의 -2.8%보다 훨씬 낮은 -5.4%까지 추락하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학계 일각에서는 현재의 2% 물가안정목표를 상향조정하여 인플레이션 기대와 장기금리 수준을 높임으로써 통화정책의 공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만일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수준에서 고착화될 경우, 이를 변경시키고자 하는 정책은 작지 않은 경제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입니다. 1970년대에 형성된 높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교정하기 위해 1980년대 초반에 미국이 겪어야 했던 경기침체(‘Volker Recession’)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20여년에 걸쳐 형성된 디플레이션 기대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최근 일본 통화당국의 힘겨운 노력은, 그 반대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이 목표수준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도록 안정시키는 것은 통화정책의 핵심 과제입니다.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 안정은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담보하는 필수조건이기도 합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확고히 안정되어 있어야 (즉, 필립스 곡선의 위치가 이동하지 않아야) 기준 명목금리 조정이 실질금리의 변화로 이어지면서 실물경제에 의도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통화당국들이 기대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기 위해 물가안정목표제에 대한 시장과의 소통을 크게 강화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엄청난 충격에도 디플레이션 기대가 형성되지 않았으며, 유례없이 공격적인 통화팽창에도 기대인플레이션이 급등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을 제외한 대다수 선진국에서의 기대인플레이션은 2% 내외에서 큰 변화 없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아직 기조적 인플레이션과 기대인플레이션이 목표수준인 2% 부근에 안착되어 있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우리의 경우, 물가안정목표제에 대한 통화당국의 약속(Commitment)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가안정목표는, 실물경제의 총수요 상황을 집약적으로 반영하는 기조적 물가흐름에 대한 준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의 방향을 안내하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폭풍우가 몰려오고 암초가 나타날 때 일시적으로 항해경로를 바꿀 수도 있으며, 바뀐 뱃머리를 등대 방향으로 되돌리는 속도를 상당 기간에 걸쳐 서서히 조절하는 신축성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항해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명확히 알림으로써 탑승객의 불안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실제 통화정책을 그와 같은 방향으로 꾸준히 집행하여 물가안정목표제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확보할 때,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이 안정되고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제고될 것입니다. 대부분 국가의 중앙은행법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은행법 제1조도 안정적 인플레이션의 유지라는 ‘물가안정’을 통화정책의 1차적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사료됩니다.
통화당국의 입장에서는 물가안정목표제의 성실한 수행이 법에 의해 주어져 있는 책무(Mandate)인 동시에 시장 혹은 국민과의 약속인 것입니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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