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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제주의 포구③] 수전포 “두 갈래 해류가 마치 ‘물싸움’ 하듯”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19 04:30

수정 2018.05.25 00:43

“중산간에서는 못살겠다”며 포구 축조…설촌 시초
“눈발 흩날리듯 하얀 포말이 장관” 용당리 ‘설해개’
목마장 말 실어 나른 망장포…‘보말’ 같은 ‘보말개’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 있는 '남돌이'포구. 100여년 전에 현 아무개라는 구장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당시 현 구장은 말 장사를 했는데, 주변에 마땅한 포구가 없어 주민들과 힘을 합쳐 축조한 것이라고 한다.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 있는 '남돌이'포구. 100여년 전에 현 아무개라는 구장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당시 현 구장은 말 장사를 했는데, 주변에 마땅한 포구가 없어 주민들과 힘을 합쳐 축조한 것이라고 한다.

[제주=좌승훈기자] 포구 지명에는 자연 현상에서 유래된 것도 많다.

한경면 용당리 ‘설해개’의 ‘설해(雪海)’는 ‘눈 바다’다. 풍향, 풍속이 따로 설명되지 않은 제주의 거센 바람은 파도를 수없이 일으켜 뭍으로 보냈다. 그리고 갯바위에 부딪힌 파도는 쉴 새 없이 하얀 포말을 허공에 뿌렸다. 그 모습이 마치 눈발처럼 휘날린다고 해서 ‘설해개’다.
‘설해개’ 인근의 드넓은 돌밭도 ‘설해빌레’다.

서귀포시 송산동 ‘수전포(水戰浦)’는 두 갈래의 해류가 마치 ‘물싸움’을 하듯 포구 중앙을 감싸 돈다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두 갈래의 해류는 포구 정면에 자리 잡은 ‘새섬’의 ‘동모’와 ‘서모’에서 흘러든 것으로 지형적 영향이 크다.

[fn+ 제주의 포구③] 수전포 “두 갈래 해류가 마치 ‘물싸움’ 하듯”

서귀포시 대천동 월평포구는 달빛을 품은 작고 아름다운 포구다. 1980년대에까지만 해도 태우와 풍선이 있었으며 마을 사람들은 동물개, 동물포구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사진=제주관광공사]
서귀포시 대천동 월평포구는 달빛을 품은 작고 아름다운 포구다. 1980년대에까지만 해도 태우와 풍선이 있었으며 마을 사람들은 동물개, 동물포구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사진=제주관광공사]

남원읍 하례 1리 ‘망장포’는 지명에서부터 바다 내음이 가득하다. ‘그물 망(網)’자와 ‘벌일 장(張)’자를 써 ‘망장(網張)’이라고 했다. 어망이 얼마나 많이 널려 있었길래 '망장'이었을까?

물론 다른 견해도 있다. ‘망장포’ 인근 ‘예촌망’에 봉화대가 있었으며, 이곳에서 봉화를 올렸다고 해서 ‘바랄 망(望)’자를 써 ‘망장(望張)’이라는 것이다.

고려 말에는 조공포(租貢浦)로서, 목마장의 말을 실어 날랐다는 이 곳은 현재 포구로서 쓰임새를 다 했다. 포구 입구에 있는 ‘오각돌’은 한때 이곳이 어항이었음을 보여준다. ‘오각돌’은 일종의 ‘항로 표지석’이다. 수심이 낮은데다 곳곳에 암초가 있어 어선들의 드나듦이 여의치 않자, 오각형태의 돌덩어리를 박아 바닷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또 이곳은 제주도내 여느 포구와는 달리, 간만(干滿)의 차를 감안해 선착장에 3~4단의 돌계단을 오밀조밀하게 쌓아 놨다. 배를 언제든지 댈 수 있도록 포구의 쓰임새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던 제주 선민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한림읍 금능리 '돈지'. 금능으뜸원 해변에서 3분 거리에 있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바다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사진=제주관광공사]
한림읍 금능리 '돈지'. 금능으뜸원 해변에서 3분 거리에 있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바다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사진=제주관광공사]

한림읍 귀덕2리의 옛 이름은 ‘진질’이다. 긴 길(長路)을 뜻한다. 포구 이름도 ‘진질개’다. 방파제를 떠받치는 코지 이름 조차 ‘진질’이다. 이 코지는 방파제 끝까지 뻗어나가 있다.

예로부터 한림읍 귀덕리의 지세는 ‘호랑이가 누운 형상’이다. 귀덕리 중산간, 신흥동 속칭 ‘멀왓’이 ‘호랑이 꼬리’라면 ‘진질’은 호랑이 주둥아리에 해당한다.

‘진질’은 바람 많은 동네다. ‘진질개’의 버팀목인 ‘진질코지’는 호랑이가 포효하듯 일년 내내 크고 작은 바람에 시달린다.

샛바람, 마파람, 갈바람, 하늬바람만 있는 게 아니다. 여기에다 신샛바람, 갈마파람, 산북쇠바람, 댓바람, 돗괭이 등이 뛰어든다. 하늬바람도 서하늬, 갈하늬, 높하늬가 있다. 태풍은 ‘넘친 바람’이다. 한라산에서 불어닥치는 바람은 ‘을지풍’이라고 했다.

60대 구릿빛 어부가 일러주는 대로 대충 감만 잡을 뿐이다. 이곳에 붙박고 살지 않는 한, 일일이 바람의 방향과 습성을 따지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한림읍 옹포리 '독개'. [사진=제주관광공사]
한림읍 옹포리 '독개'. [사진=제주관광공사]

“중산간에서는 못살겠다”며 포구를 만든 곳도 있다. 한경면 판포리의 ‘엄수개’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한경면 저지리에 살던 ‘변(邊)엄수‘라는 사람은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바닷가 용천수를 길러왔다가 그만 물허벅을 깨트리는 바람에 아예 “’웃드르‘에서는 못살겠다”며 눌러 앉은 게 판포리 설촌의 시초라고 전해진다. 포구 지명도 포구를 축조한 사람의 이름을 따 ’엄수개‘리고 했다.

그렇다면 ’변엄수‘는 실제 인물일까? 원주 변씨 족보를 보면, ’변엄수‘는 15대 손인 ’변인겸(邊仁謙)‘이다. 1779년생으로 조선 정조 때의 인물. 그런데 이름이 다르지 않은가? 이에 대해 이 마을 변씨들은 “’변인겸‘이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한데다, 누대로 ’변엄수‘라고 불렀다”며 “’엄수‘는 아명(兒名)이거나 ’인겸‘의 다른 이름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른 주장도 있다. 이 곳은 예로부터 파도에 휩쓸려 뱃사람들이 많이 죽는다고 해서 ‘엄수개’라는 것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엄수개’는 ‘바다가 엄한 포구’다.

서귀포시 대포동 '큰개'. 인근에 주상절리가 아름답게 펼쳐진 지삿개 해안과 약천사가 자리 잡고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것이다. [사진=제주관광공사]ㅣ
서귀포시 대포동 '큰개'. 인근에 주상절리가 아름답게 펼쳐진 지삿개 해안과 약천사가 자리 잡고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것이다. [사진=제주관광공사]ㅣ

반면, 남원읍 신흥1리 포구는 지형이 ‘보말’같이 생겼다고 하여 ‘보말개’다. 제주 선민들은 바닷가에 수닥수닥 붙어있는 그 흔한 해산물인 ‘보말’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보말도 고기다’라고, 먹을 것이 궁할 때는 보말도 고기처럼 귀하게 여겼다.

한림읍 옹포리 '독개'는 항아리(甕) 모양과 같다고 해서 ‘독개’인지, 아니면 독(纛, 군대의 대장 앞에 세우던 큰 의장기)를 세웠다고 해서 ‘독개’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이곳은 고려 공민왕 21년(1372) 공마(貢馬)를 거절해 반란을 일으킨 목호(牧胡)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최영 장군이 양광(揚廣)·전라(全羅)·경상(慶尙)의 삼도(三道) 군사 2만565명을 이끌고 명월포(明月浦)로 상륙한 일이 있었으며, 당시 명월포는 옹포를 말하는 것이므로, 상륙할 때 독(纛)을 세웠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반면, 포구 안쪽에 자리 잡은 속칭 ‘모살개창’은 밀물이나 썰물에 가릴 것이 없이 항상 바닷물이 고여 있어 이를 빗대 ‘독개’라고 불렀다는 주장도 있다.


다시 말해 ‘독(甕)‘도 ’독(纛)’도 아니라는 것이다. 옹포리의 옛 이름은 ‘게 해’자와 ‘연못 당’을 써 해당(蟹溏)이라고 했으며, ‘독개’ 형상이 ‘게가 연못을 끌어안은 모양’을 닮으면 닮았지 항아리 모양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3/5 끝]

[편집자 주 : 제주의 포구는 5회로 나눠 연재됩니다.]
jpen21@fnnews.com 좌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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