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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1999년의 구대성, 2018년의 정우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28 17:08

수정 2018.05.28 17:08

환상의 볼 배합으로 위기상황 극복
세이브 쌓아가는 정우람을 보면
한화의 전성기 이끈 구대성 떠올라
그 패기로 맞이할 가을이 기다려진다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1999년의 구대성, 2018년의 정우람


정우람(33.한화.사진)은 27일 힘겹게 세이브 하나를 추가했다. 7-4로 3점 앞선 연장 10회 말. 정우람에게 3점차 세이브는 주머니 속 곶감 빼먹기나 다름없어 보였다.

한화의 철벽 마무리. 19경기째 이어온 0의 행진. 20이닝을 던진 투수 가운데 유일하게 0점대(0.82) 평균자책점을 지켜내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팀 홈런 1위(83개), 팀 장타율 1위(0.483)의 SK. 한화는 올 시즌 SK에게 전패를 당하고 있었다. 정우람은 김성현과 이재원에게 징검다리 안타를 맞고 1실점했다.
계속된 2사 1, 2루의 위기. 다음 타자는 3번 한동민, 이어 4번 최정으로 점증되는 숨가쁜 타선이었다.

한 방이면 끝나는 상황. 막다른 골목에서 정우람의 볼 배합이 빛을 발했다. 슬라이더와 커브로 1-2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다음 거푸 3차례 직구를 던졌다. 시속 140㎞를 간신히 찍는 스피드였지만 한동민의 배트는 파울만 쳐댔다. 느린 변화구 다음에 오는 직구의 착시 효과. 볼카운트 2-2. 정우람은 7구째 슬라이더로 한동민을 우익수 뜬공 처리했다. 빠른 공과 변화구의 환상적 믹싱이었다. 정우람의 투구를 보면 구대성(49)이 떠오른다. 타자와의 타이밍 싸움에 누구보다 능했던.

구대성은 대전고 1학년 때 이미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정우람 역시 경남상고(현 부경고) 1학년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구대성은 우승 청부사였다. 고 2때 주전 투수로 활약하며 모교를 1987년 제42회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려놓았다.

대전고의 전국대회 첫 우승이었다. 우승 청부사 구대성의 진가는 대학과 프로에서도 이어졌다. 한양대 야구부의 역사는 구대성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 구대성 이전 한양대는 1988년 두 차례나 준우승에 머물렀다.

한양대는 1989년 프로구단 한화와 치열한 스카우트 싸움 끝에 구대성을 낚아챘다. 당초 구대성은 프로를 택하려 했다. 하지만 신부전증을 앓던 아버지의 평생 무료 진료를 약속한 한양대의 파격적인 제안에 마음이 흔들렸다. 구대성 이후 한양대는 첫 해 두 번이나 대학야구대회 정상을 정복했다. 이후 정민태-구대성을 앞세운 한양대 전성기가 열렸다.

구대성은 1993년 한화에 입단했다. 그리고 6년 후 한국시리즈서 롯데를 상대로 1승 3세이브를 기록, MVP에 선정됐다. 한화의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2004년 SK에 입단한 정우람은 팀을 세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7년과 2008년엔 핵심 불펜 요원으로, 2010년엔 마무리 투수로 세 개의 우승 반지를 선물했다. 2010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서는 승부의 분기점을 이룬 1차전서 구원승을 따냈다. SK는 여세를 몰아 4연승했다.


한화는 27일 경기의 승리로 큰 고비 하나를 넘었다. 두산, SK와의 6연전을 5할 승률로 마감한 것. 정우람은 19세이브째를 따내 이 부문 2위(함덕주.10개)와의 거리를 더욱 벌였다.
한화와 정우람의 가을 야구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texan50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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