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재난씨, 우리 헤어져] ③ 2016 대설로 인한 고립사태, 제주공항 '아수라장'

김아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09 09:19

수정 2018.06.09 09:19

2016년 1월24일 폭설로 항공편 운항이 전면 중단되면서 제주공항 내에 승객들이 체류하고 있는 모습.
2016년 1월24일 폭설로 항공편 운항이 전면 중단되면서 제주공항 내에 승객들이 체류하고 있는 모습.
우리나라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휴양 관광지 제주도, 이곳의 겨울은 육지에 비해 짧고 따뜻한 것이 특징이다. 기상청이 관측한 이래 제주시 도심에서 10cm 이상 눈이 쌓인 것은 약 다섯 차례, 이 중 가장 많은 눈이 쌓인 것은 1984년 1월의 13.9cm가 최고였다. 그런데 2016년 1월 23일 제주도에서는 한파와 강한 바람이 불면서 많은 눈이 오기 시작했다. 이날 내린 눈은 오후 8시쯤 최대 12cm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1984년 이후 32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것이다.

이날 제주공항에서는 폭설과 난기류로 인한 기상특보가 발효되면서 1월 23일 오후 5시 50분부터 활주로 운영과 항공편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항공기 운항 중단이 지속되면서 공항 내 체류객에 대한 구호물품과 숙소, 이동수단 등이 부족해 많은 불편이 발생했다. 특히 일부 항공사가 운항재개를 하기 위해 항공권을 선착순 배부하기 시작하면서 공항 내부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당초 1월 25일 오전 9시까지로 예고됐던 활주로 폐쇄는 한 차례 연장, 결국 약 50여 시간 만인 오후 8시부터 항공기 운항을 재개할 수 있었다. 불편을 겪은 관광객은 약 8만 6000여 명. 이 유례없는 대규모 고립사건은 체류객을 고려한 재난구호시스템이 마련되는 계기가 됐다.

제주공항의 고립 첫날인 1월 23일, 항공기 결항이 속출하자 공항카운터는 승객들의 문의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휴대전화는 사용자 폭주로 한동안 먹통이 됐고 곳곳에서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의 충전을 위한 콘센트 선점 경쟁이 시작됐다. 의자 대신 사용할 공항 카트를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도 벌어졌다. 몇몇 사람들은 바닥에 깔 대형 박스를 공수하는 등 장기전에 대비하기도 했다. 공항 내 편의점의 식료품은 순식간에 동이 나 버렸다. 해가 지자 공항 내 체류객을 위한 생수 수십 박스가 조달되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어둠이 내려앉자 사람들은 공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버스와 택시 정류장은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정류장에 버스 한 대가 들어오자 어림잡아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같은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아수라장에 외마디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 외쳤다.

"어딜 가든 여길 빠져나가야 해!"
1월 23일부터 시작된 비행기 결항과 탑승 대기로 인해 공항 내 체류객은 최대 1600여 명에 이르게 됐다. 그러나 24일 오전까지 항공기 결항 사태에 대한 상황 정보와 교통, 숙박 등의 지원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고, 모포와 간식 지원 등의 구호 활동도 미흡해 체류객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당시 국내 재난구호시스템은 지자체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구호 활동을 전개하도록 이루어져 있었다. 따라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구호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것이다. 국내 대표적인 관광지인 제주도에서는 문제를 인식하고 2014년에
'공항 체류관광객 대응체계 구축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최대 500명을 기준으로 수립됐기에 당시 고립 사태에 대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공항공사와 항공사의 비상대응시스템도 문제였다. 대부분 공항 활주로와 항공기 정상 운영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에 기상악화로 인한 공항 내 장기 체류자에 대한 보호조치는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항공기 결항으로 발생한 체류객들은 이후 운행이 재개될 경우를 대비해 좌석을 예약하게 된다. 제주공항의 고립사태 당시 국내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기존 예약순서에 따라 탑승 3시간 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알렸다. 공항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게 유도한 것이다. 그러나 저비용 항공사들의 조치는 이와 달랐다. 당시 저비용 항공사들은 공항에서 대기하던 승객들에게 선착순으로 좌석을 배부했다. 그 결과 조금이라도 일찍 돌아가고 싶은 체류객들이 대기 순번표를 받기 위해 공항에서 계속 대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오랜 기다림에 지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체류객들은 거세게 항의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저비용 항공사들은 재난상황에 대비한 문자시스템을 구축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방법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대기번호를 받기 위한 체류객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고 공항의 모든 카트는 의자로 이용됐다. 체류객들이 즐비한 공항은 밤이 되면 마치 난민촌처럼 변해 갔다. 일부 체류객들은 종이박스로 집을 짓기도 했고 가지고 있던 텐트를 설치하기도 했다. 난간과 가방 위에는 빨래가 걸려 있었다. 당시 제주공항에서 체류객들의 대규모 노숙 사태가 벌어진 이유 중에는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는 대중교통이 부족한 측면도 있었다. 제주공항은 도심과 4~5km 정도 떨어져 있었으므로 영하의 한파 속에서 도보로는 이동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중교통과 택시 등은 심야시간에는 운행이 종료되었고, 일부 택시는 도심까지 턱없이 비싼 요금을 받아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시 제주항공청과 한국공항공사, 그리고 제주도의 대설대비 위기관리 매뉴얼은 각각 활주로 제설작업, 공항운영 정상화, 지역 고립주민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따라서 공항 체류객의 안전과 구호활동은 누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불명확했다. 또 통합매뉴얼도 없었기 때문에 유관기관 간 유기적인 업무협력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관련 기관들은 각자의 역할과 업무를 협의, 기관간 협력 방안을 강구했다. 당시 제주도청은 체류객들의 불편사항을 해소하는 역할을 맡았다. 제주항공청은 비행통제 해제 시 항공기 운항준비를 위한 활주로 제설과 항공기 날개의 해빙작업을 담당했다. 각 항공사와 공항공사는 공항 내 체류객들에게 대기표를 발부하고 문자 메시지를 전송하는 업무 등을 수행했다. 한편 관광협회에서는 숙박,식당, 찜질방, 사우나 등의 편의시설 안내를 맡았다. 특히 제주도청 직원들은 직접 공항으로 가서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체류객들의 불편을 현장에서 해소하기위해 노력했다. 또 제주공항이 전면 통제된 이튿날에는 공항 체류객들의 시내 이동을 지원하기 위해 2개 노선에 대한 무료 버스 20대를 운영하기도 했다.

정부는 제주공항의 고립사태를 거울삼아 구호물자의 비축기준을 지역 특성에 맞게 조정했다. 특히 제주도, 울릉도 등의 도서지역은 지역 특성과 관광객을 고려, 구호물자 비축기준을 상향 조치했다. 또 제주공항이 정상화된 이후 제주도청과 제주항공청, 공항공사 등은 각 기관별 위기관리 단계별 임무와 역할을 명확히 규정한 통합매뉴얼을 작성, 실제 관계 기관 합동훈련을 실시해 매뉴얼을 최적화했다.

2016년 4월 16일, 강풍이 몰아친 제주공항에서는 항공기 261편의 결항 사태가 발생했다.
이때 제주도 내 관련 기관들은 준비된 통합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게 대응했고 그 결과 공항 내 체류객을 400명으로 최소화할 수 있었다. 또 담요, 매트, 음료 등을 신속하게 지원하는 등 지난 1월의 고립 사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줬다.


[재난씨, 우리 헤어져] ③ 2016 대설로 인한 고립사태, 제주공항 '아수라장'
<이 기사는 행정안전부가 과거 재난대응의 문제점과 교훈을 담아 발간한 재난대응 사례집 '재난씨, 우리 헤어져'의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true@fnnews.com 김아름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