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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간병에 지극정성 30대 남편, 층간소음 시비 전과자로 '전락'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20 15:30

수정 2018.06.20 17:49

/사진=연합뉴스TV
/사진=연합뉴스TV
혼절하는 아내의 간병을 위해 병원 인근으로 집을 옮기고 직장까지 포기했던 30대 남성이 이웃 간 층간소음 시비로 전과자가 됐다.

아내가 층간소음으로 잠을 설치면서 건강이 더욱 악화된 상황에서도 이웃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나 층간소음이 끊이질 않자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5년 전인 2013년 친구의 소개로 아내 B씨와 만나 결혼한 남편 A씨(33). 그는 화목한 가정을 갖고 싶은 꿈을 이뤘지만 고민이 날로 늘어갔다. B씨가 잦은 빈혈·복통 등 증상으로 회사에서 혼절하는 등 건강이 많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A씨는 결혼 전 B씨가 상경해 가족과 떨어져 홀로 거주하는 모습을 보고 평생 B씨의 곁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만큼 B씨를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B씨는 병원에서 뇌졸중 등 진단을 받고 수술했다. 그러나 안정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면 재발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이에 A씨는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B씨의 곁을 지키고 간호하기 위해 술과 담배를 끊었으며, 어머니의 반대를 뿌리치고 야근이 많던 회사를 그만뒀다.

대신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밤낮으로 아내 B씨를 간호했고, 결국 A씨의 정성 덕분에 B씨는 호전됐다. 그러나 서울 마포구 자택 주변 재개발 공사로 심한 소음이 발생하면서 B씨가 휴식을 취하지 못해 질병이 재발, 재수술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2016년 5월 A씨는 B씨의 요양을 위해 도봉구의 조용한 주택가로 이사를 했으나 이번에는 층간소음이 문제였다. 입주 첫날 새벽부터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A씨와 B씨는 윗집의 층간소음에 시달렸다.

평소 밤 11시에서 오전 6시 사이 음식물 분쇄기·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에 심지어 부부싸움, 윗집 딸의 괴성까지 온갖 소음이 들려오면서 B씨는 점점 건강이 악화됐다. 수면제 없이는 잠도 자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그래도 A씨는 층간소음 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하기 위해 카카오톡을 통해 입주자 회의를 열고 윗집 여자에게 정중히 소음 자제를 부탁했다. 같은 세대 주민들에게서도 층간소음에 대한 지적을 받았으나 "까탈스럽다", "신경이 예민해서 어떻게 사냐", "윗집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오해한다" 등의 답변만이 돌아왔다.

하다 못한 주민들이 '밤 10시 이후 음식물 분쇄기 사용금지' 등 입주자 규칙을 만들었다. 그러나 윗집 소음은 여전했다. 오히려 발을 굴러 소음을 유발하거나 창문을 열고 A씨 부부에게 큰소리로 비아냥대기도 했다.

결국 A씨는 홧김에 흉기를 든 채 윗집에 항의하는 상황에서 윗집 여자를 밀쳐 다치게 했다. 흉기를 휘두르려고 했으나 서글피 울며 만류하는 B씨를 보고 정신 차린 뒤 집으로 돌아왔다.

검찰은 A씨를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기소했고, 최근 법원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흉기를 소지한 채로 윗집에 가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한 점 등이 죄질이 불량하다"면서도 "다만 피해자와 합의하고 피해자 상해의 정도가 중하지 않은 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장기간 걸친 층간소음으로 피고인과 배우자가 스트레스를 받았던 점 등을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이와 관련, 백남법률사무소의 백재승 대표변호사는 "층간소음에 대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격화돼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행위자 입장에서 억울하겠지만 구속되거나 실형을 선고받을 수 있으니 초반부터 변호인을 선임해 올바른 변론 방침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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