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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일번지' 서울 대치동, 사실은 600년 된 마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25 11:15

수정 2018.06.25 11:15

'사교육 일번지' 서울 대치동, 사실은 600년 된 마을
1970년대 이후 논밭과 침수지였던 대치동은 학원가의 대명사로 성장했다. 대치동 학원가가 형성된 이유와 특성을 분석한 책이 나와 화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지난해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도시센터와 공동으로 대치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진행, 그 결과를 담은 '대치동 사교육 일번지'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25일 밝혔다.

대치동이 사교육 중심지로서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이며 그 배경에는 강남 명문중고가 즐비한 대치동의 교육열기와 입시제도와 학원규제의 변화, 고학력 강사군의 유입, 유해업소가 없는 대치동의 입지여건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운동권 학생들과 전교조 출신 고학력자들이 학원가로 대거 유입, 1992년 학원수강 금지 해제, 1994년 수능제도 도입으로 학원가는 급성장했다.


대치동 주변에는 휘문고, 숙명여고 등 명문고가 다수 포진돼 있어 높은 교육열을 지닌 수요층이 기본적으로 자리잡고 있었기에 유해업소가 없는 안정적인 주거지로서 주변보다 임대료가 저렴한 이곳에 학원들이 속속 자리잡았다. 대치동에 대형학원들이 들어서면서 사교육일번지의 명성을 얻게 되는데, 신호탄이 된 것이 정상어학원(1986년)이며 이어 강남대일학원(1993년), 메가스터디(2000년)가 설립돼 2014년 기준 대치동에는 1056개(사업체자료 기준)의 학원이 있다.

대치동에는 학령기 아이들을 둔 40대 부모와 10대 자녀들이 있는 가정이 주를 이루며 1998년부터 2016년까지 18년간 거의 그 틀이 유지되고 있다. 전출입의 특성도 40대 인구전입이 가장 많고, 입시를 마감한 20대 인구전출이 가능 많다. 2017년 대치초등학교 5학년의 한 반을 조사한 결과 26명의 학생 중 15명이 지방, 외국, 인근지역에서 전학 온 아이들이었다.

소위 ‘대전세대’ 라고 불리는 이들은 자녀의 교육을 목적으로 대치동에 전세로 머무는 가구를 지칭한다. 실례로 은마아파트는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세가로 인해 전체 가구수 중 전세비율이 60~70% 될 정도로 높다고 한다. 은마아파트의 W공인중개사에서 입수한 부동산 장부를 분석해보면, 학년이 바뀌는 1~3월 사이 이주가 년중 가장 높고, 은마아파트 28개동 중 대치사거리 학원가와 가까운 15동이 가장 인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마아파트와 휘문고등학교 사이 언덕은 대치동 구마을로 불리는 한티마을이다. 마을 초입에는 530년 된 은행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은마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이 땅에 농사를 일구며 살아가는 96호 105세대가 모여사는 마을이었다.

한티마을 토박이들은 마을의 모습을 담은 지도를 만들기 위해 여러차례 시도했고, 여러 간략한 판본이 있다.
이중 1999년에 그려진 지도에는 96호의 가옥과 세대주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있을 정도로 자세했다. 이런 그림지도를 바탕으로 항공사진, 구술을 통해 1960년대 마을 지도를 완성했다.


마을에는 중간말, 능안말, 아랫말, 움말, 새말로 구분된 거주공간이 있었으며, 그 외 5개의 공동우물, 공회당(마을회관), 상여창고, 공동묘지, 연자방아 등이 있었다.

true@fnnews.com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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