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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쌍릉 주인, 서동요의 주인공 백제 '무왕'일 가능성 높아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18 14:42

수정 2018.07.18 14:42

익산 쌍릉(대왕릉) 봉분 조사전 모습
익산 쌍릉(대왕릉) 봉분 조사전 모습
익산 쌍릉의 주인으로 서동요의 주인공 백제 무왕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월 익산 쌍릉에서 발견된 사람 뼈에서 남성 노년층의 신체 특징과 병리학적 소견을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그동안 쌍릉은 백제 시대 말기의 왕릉급 무덤이며 규모가 큰 대왕릉을 신라의 선화공주와 결혼한 서동 설화의 주인공인 무왕의 무덤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했는데 이번 인골 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나왔다.

쌍릉의 존재는 '고려사'에서 처음 확인됐으며 고려 충숙왕 때인 1327년 도굴됐다는 사건기록도 남아 있다. 당시부터 쌍릉은 고조선 준왕이나 백제 무왕의 능이라는 설이 있었다.
1917년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는 쌍릉을 단 며칠 만에 발굴하면서 백제 말기의 왕릉이거나 그에 상당한 자의 능묘라는 것은 확인했지만 1920년 고적조사보고서에 단 13줄의 내용과 2장의 사진, 2장의 도면만 공식기록 전부로 남겨놓았다.

목관 복원 3D 이미지
목관 복원 3D 이미지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8월부터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하나로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익산시와 공동으로 쌍릉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석실 끝부분에서 여태까지 그 존재가 알려진 바 없던 인골 조각이 담긴 나무상자를 발견했다. 100년 전 일제가 발굴하면서 다른 유물들은 유출했지만 이는 꺼내 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익산 쌍릉 석실 내부 구조와 목제유골함의 위치
익산 쌍릉 석실 내부 구조와 목제유골함의 위치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 인골 자료가 무덤의 주인과 연결된다면 백제 무왕의 능인지를 결정짓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가톨릭의대 응용해부연구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미국 베타연구소 등 고고학과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암석학, 임산공학, 물리학 등 관련 전문가들을 모두 참여시켜 인골의 성별, 키, 식습관, 질환, 사망시점, 석실 석재의 산지, 목관재의 수종 등을 정밀 분석했다.

목제유골함과 인골파편 발견 당시 모습
목제유골함과 인골파편 발견 당시 모습
102개의 조각으로 남아있던 인골을 분석한 결과 성별은 남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팔꿈치 뼈의 각도와 발목 뼈 중 하나인 목말뼈의 크기, 넙다리뼈 무릎 부위의 너비를 분석한 결과 남성일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넙다리뼈의 최대 길이를 추정해 산출한 결과 키는 161㎝에서 최대 170.1㎝로 추정되는 사람의 뼈인 것으로 나타났다. 훨씬 후세대에 속하는 19세기 조선 시대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61.1㎝인 것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큰 키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무왕에 관한 묘사에서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고 되어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무왕의 유골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나이는 최소 50대 이상의 60~70대 노년층으로 추정됐다. 조사를 진행한 가톨릭대학교 의대 이우영 교수는 "발견 당시 왼쪽 무릎뼈와 목말뼈 외에 다 조각이어서 이를 분리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며 "분리 결과 중복되는 뼈 부분이 없어 보관돼 있던 뼈를 한 사람의 뼈인 것으로 분석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목의 울대뼈가 있는 갑상연골에 골화가 상당히 진행됐는데 이는 성인 남성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연골이었던 뼈가 골화가 되는 경우가 많아 사망 당시 60대 이상의 노인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또 골반뼈 결합면의 표면이 거칠고 작은 구멍이 많이 관찰되며 불규칙한 결절이 있는 것과 낙마 또는 낙상으로 인한 옆구리 아래 골반뼈에 선상 골절 흔적이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또 남성 노년층에서 발병하는 등과 허리가 굳는 광범위특발성뼈과다증세와 정강뼈와 무릎뼈의 척추외골화로 말년에 다리와 무릎의 통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조사팀은 발견된 인골의 정강뼈에 대해 가속 질량분석기를 이용해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실시했다. 그 결과 사망시기가 서기 620년에서 659년 사이로 산출돼 인골의 주인은 7세기 초중반의 어느 시점에 사망한 것을 추정됐다.

한편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뼈가 심하게 부식돼 유전자 분석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뼈에서 추출한 콜라겐의 탄소 안정동위원소 분석으로 뼈의 주인이 벼, 보리, 콩 등의 섭취량이 많았음을 알 수 있었고 질소 안정동위원소 분석으로는 어패류 등의 단백질 섭취의 가능성도 확인돼 최소 당대 최고급 관리 또는 왕족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편 고분 내 석실은 익산에서 약 9㎞ 떨어진 함열읍에서 채석한 것으로 추정됐다. 석실 또한 한겹으로 구성돼 고분을 지을 당대 최고의 기술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신을 보관하는 관의 경우 4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최고급 건축 가구재인 금송으로 제작됐으며 늦어도 7세기 전반 이전에 벌목된 것을 가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발견된 유골함은 잣나무류의 판자로 일제강점기 당시 조사를 수행했던 일본인 학자들이 유골을 옮겨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600년에 즉위해 641년 사망했다는 무왕의 재임 기록과 무왕의 사망 나이가 남성 노년층으로 추정되는 쌍릉의 인골 추정 나이와 비슷하며, 사망 시점이 7세기 초반부터 중반 즈음이라는 인골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익산을 기반으로 성장해 같은 시기에 왕권을 확립한 백제 무왕의 무덤일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으로 판단했다.

한편, 이번 조사결과는 국립전주박물관이 지난 2016년 일제강점기 조사 당시 대왕릉에서 수습한 치아를 분석해 20∼40세 여성의 것이라 밝혔던 사실과는 배치되는 결과다. 국립부여문화재 연구소 이상준 소장은 "전주박물관에 있는 치아의 경우 아래턱뼈의 치아로 당시 치아의 크기 등을 추정해 분석한 것이지만 이번에 발견된 치아는 윗턱뼈의 치아였다"며 "이번 조사를 시행하며 전주박물관에 소장된 치아도 다시 재조사한 결과 남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다시 밝혀졌다"고 말했다.


또 이상준 소장은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있어 소왕릉 조사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쌍릉에서 대왕릉의 조사를 마무리한 뒤 내년에는 옆의 소왕릉 발굴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그 때 인골이 또 나오고 추측할 수 있는 자료가 있을 경우 발표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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