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이렌 울려도 길 안비켜… 날도 뜨거운데 속까지 타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29 16:54

수정 2018.07.29 16:54

[현장르포] 폭염 뚫고 달려가는 119구조대
자살시도자 구조·벌집 제거, 엘리베이터 갇힘 등 다반사
신고 접수되면 시간과 사투.. 이동하는 차에서 장비 착용
하루 수차례 출동에 땀범벅.. "그래도 사람 안다치면 보람"
지난 27일 오전 11시께 자살시도자 신고를 받고 출동 중인 인천남부소방서 119구조대 구난차 안 모습. 총알처럼 달리는 구난차 안에서 구조장비를 착용한다. 사이렌을 켜지만 길을 비켜서지 않는 차량도 눈에 띈다. 오른쪽 사진은 같은날 오후 3시 홀로 사는 노인이 한 달 넘게 보이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인천남부소방서 대원들이 잠긴 문을 열고있는 모습. 사진=서동일 최용준 기자
지난 27일 오전 11시께 자살시도자 신고를 받고 출동 중인 인천남부소방서 119구조대 구난차 안 모습. 총알처럼 달리는 구난차 안에서 구조장비를 착용한다. 사이렌을 켜지만 길을 비켜서지 않는 차량도 눈에 띈다. 오른쪽 사진은 같은날 오후 3시 홀로 사는 노인이 한 달 넘게 보이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인천남부소방서 대원들이 잠긴 문을 열고있는 모습. 사진=서동일 최용준 기자

한 걸음 계단을 오를 때마다 열기와 악취는 점점 강해졌다. 지난 27일 오후 3시 인천남부소방서 119구조대가 도착한 곳은 다세대 빌라였다. 빌라 꼭대기 4층에 홀로 사는 노인이 한 달 넘게 보이지 않는다는 신고 때문이었다. 여름철 곧잘 들어오는 '생사확인' 신고다. 이미 1층에서 음식물 쓰레기통 밑바닥에서 날 것 같은 냄새가 건물을 휘감았다. 이날은 기온 35도 중복(中伏)이었다.

"계세요?" 조현국 구조대원(38)이 문을 두드리지만 답이 없다. 굳게 닫힌 문에서 부패한 공기가 새어나왔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썩은 식초 냄새 같았다.

조 대원은 열쇠구멍에 정을 대고 망치질했다. '쾅' '쾅'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잠긴 문을 열자 뜨거운 바람과 함께 파리들이 솟구쳤다.

고독사였다. 화장실에 시신이 있었다. 시신 위에 가득 쌓인 구더기가 꿈틀댔다. 구더기에 가려져 형체를 알기 어려웠다. 119구조대에게는 여름철 자주 목격하는 죽음이다. 조 대원은 "이번은 냄새가 심한 게 아니다"라며 "무더위에 부패한 시신은 눈이 시큼할 정도로 냄새가 난다. 돌아오는 구조차 안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사이렌 켜고 달려도…시민들 길 안 비켜

여름, 119 구조대가 싸우는 건 더위와 화재뿐만이 아니다. 냄새, 시간, 다른 계절보다 더 필요한 인내심과 싸운다. 하루 동안 구조대 활동을 동행 취재했다.

인천남부소방서 119구조대는 모두 19명이다. 3팀으로 나뉘며 1팀당 6명이 근무한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3교대 항시 근무다. 구조대에는 에어매트 등이 실린 8t 구조공작차와 5t 구난차가 도로 쪽으로 전면 주차됐다. 문영현 구조대장은 "평균 10건 정도 신고가 접수된다. 여름에는 주로 말벌 포획, 정전 엘리베이터, 독거노인 생사확인을 위한 문 개방이 많다"고 설명했다.

신고가 접수되면 시간과 싸운다. 구조대에 비상벨이 울리고 출동지령서가 프린트에서 자동 인쇄된다. 요구조자 위치, 내용 등이 적혀 있다. 이날 오전 11시께 출동한 사건은 자살 시도자가 화장실 문을 잠가서다. 대원들이 벌떡 일어나 구난차로 달린다. 구난차 운전대를 잡은 정갑준 구조대원(37)은 도로를 질주한다. 사이렌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울린다.

문제는 사거리나 좁은 골목길이다. 사이렌이 울리면 주행 중인 차는 정지하거나 길을 터야 하지만 몇몇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 휴, 아" 일각을 다투는 구난차 안에서 정 대원은 절로 탄식한다. 그는 "예전보다 많이 시민의식이 생겨 사이렌을 의식하지만 여전히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럴 때면 날씨도 더운데 목까지 탄다.

■자나깨나 안전 생각

자살 시도자 신고는 빈번한 편이지만 구조대원은 모든 출동에 목숨을 건다. 이종욱 구조부대장(52)은 덜컹거리는 구난차 안에서 장비를 착용한다. 헬멧, 조끼, 장갑 순으로 복장을 갖춘다. 이 대장이 끼는 장갑은 엄지 부근이 뜯어져 있다. 그는 "4층 베란다에서 자살하려는 중년여성을 구조한 적 있다. 배관을 타고 올라가 베란다 안쪽으로 밀어넣고 난간에 매달리는데 여성이 흉기로 손을 내리쳤다"며 "그때 찢긴 흔적이다. 이걸 보며 늘 안전을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구조대가 자살 시도자를 위해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다행히 자살 시도자가 가족의 설득에 문을 열고 나온 뒤였다. 이미 구조대원 콧등에는 땀이 매달려 있었다. 이 대장은 "(신고 후 별일 없는) 이런 상황도 빈번하다. 그래도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구조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신고를 받고 총알처럼 달려갔다 되돌아온다.
축축한 옷이 마를 새가 없다. 구조대로 복귀하는 구난차 안에서 이 대장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를 가리켰다.
"저렇게 검은색 옷을 입으면 밤에 안 보여서 위험한데…." 구조대원에겐 세상 모든 게 안전과 구조로 이뤄진 듯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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