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는 1983년 8월 당시 32살로 일본에서 김해국제공항으로 입국하던 서모씨(67)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강제로 연행했다. 재일교포 유학생 김모씨가 보안사의 고문에 못 이겨 "서씨에게 포섭당해 북한에 충성맹세를 했다"고 허위 진술을 했기 때문이다.
서씨는 보안사 수사과정에서 혐의를 인정하는 내용의 진술서를 강요받으면서 "물고문이나 전기고문을 하는 전문기술자를 시켜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 비행기에 태워서 서해 바다에 던져버리겠다"는 협박을 당했다.
그는 검찰 수사단계에서도 검사로부터 "(혐의를) 부인하면 다시 한 번 보안사로 보내버리겠다. 그때는 어떻게 될지 각오하라"는 협박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보안사에서 조사받은 대로 진술했고 재판에 넘겨졌다.
일본에서 출생한 서씨는 정식으로 한국어 교육을 받는 적이 없어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재판은 통역 없이 한국어로 진행됐다. 그는 재판장이나 공판검사의 질문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 법정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보안사 수사관들이 시킨 대로 "예, 예"라고 답변,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했다.
1982년 무기징역을 확정받고 복역하던 중 1990년 특별 가석방된 서씨는 2015년 "구속영장도 없이 불법으로 구금된 상태에서 보안사의 각종 협박과 강요에 못 이겨 허위로 자백한 만큼 법정 진술과 피의자신문 조서는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은 1980년대 정부가 조작한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서씨가 낸 재심 청구 사건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재심을 담당한 서울고법은 "피고인은 원심법정에서 진술할 당시까지도 그 전의 장기간 불법구금, 협박이나 강요 때문에 갖게 된 심리적, 정신적 압박상태가 계속됐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이 사건 재심에서 "가혹행위가 없었다"고 위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보안사 전직 수사관 고모씨(79)가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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