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살 좀 빼" 라는 말이 상처인 것처럼 "살 좀 찌워"도 차별입니다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30 17:06

수정 2018.08.30 17:06

“성격이 예민해서 살 안찐다 예민하면 남자가 안좋아해” 당하는 입장선 불편한 심기
외모품평 자체가 차별발언
'살 좀 빼" 라는 말이 상처인 것처럼 "살 좀 찌워"도 차별입니다


#. 166cm에 44kg인 김모씨(30·여)는 "살좀 찌우라"는 직장 상사의 성화에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하지만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다. 회사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일로 받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회사 본부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오히려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하기 일쑤였다. 김씨는 "매일 얼굴만 보면 '그렇게 말라서 일은 제대로 하겠냐'고 하는데 기분이 나쁘다"며 "마른 사람에 대한 외모 품평에 대한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비만과 마찬가지로 마른 사람들도 외모 품평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외모 품평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사회 전반에 비만이나 용모에 대한 평가는 수그러지는 추세지만 여전히 마른 사람들은 외모 평가를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마르다는 이유로… 예민하거나 능력 없거나

3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남성 100명 중 2명(2.05%·2016년 기준), 여성 100명 중 7명(7.78%)이 체질량지수(BMI) 18.5 이하의 저체중이다. 고도비만(남5.31%, 여3.59%), 초고도비만(남0.24%,여0.61%)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비만인에 대한 외모 평가는 '탈코르셋' 운동 등으로 줄어드는 추세지만 마른 사람에게는 예외다. 전모씨(28·여)는 "살이 찐 사람들에게 '살 빼라'는 말은 상처를 준다고 생각하지만 마른 사람은 아니다"며 "오히려 '살 찌워라'는 말에 상처받으면 재수 없다고 보는 인식이 많다"고 말했다.

마른 사람들은 몸매 때문에 성격까지 규정되는 것에 고통받는다. '마르다=예민하다'는 사회적 통념이 자신들에 대한 판단 기준이 돼버린 셈이다. 전씨는 "'예민하니까 살이 안 찌지', '예민하면 남자들이 안 좋아한다'는 식으로 말할 때 특히 기분이 나쁘다"면서 "마르다는 이유로 세상만사 예민하게 굴 거라고 미리 짐작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다"고 전했다.

업무 능력도 '마르다'는 이유로 박하게 평가받는다. 178cm 55kg인 직장인 박모씨(33)는 2주마다 돌아오는 창고 정리에 열외대상이다. 지난해 박스를 떨어뜨렸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박씨는 "정상적인 사람이 박스를 떨어뜨렸다면 열외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창고 정리 시간 때 마다 모자란 사람이 된 거 같아 입이 타들어 간다"고 불만을 표했다.

■"외모 품평 하지 말아야"

마른 사람에 대한 외모 품평이 한없이 너그럽게 된 이유는 대중매체의 영향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중매체에서 마른 사람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다 보니 마른 사람의 목소리가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매체의 선봉에 서 있는 연예인도 예외는 아니다. 가수 선미는 지난 6월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여러분들이 내 체중을 걱정하고 있는 걸 알고 나 또한 말라보인다는 것을 안다"며 "하지만 난 정말 괜찮다. 제발 이제 내 체중에 대한 걱정은 그만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외모 품평 자체가 차별적인 발언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외모를 가지고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차별적"이라며 "마른 사람에 대해 품평을 하는 것도 인권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해자들이 보통 악의가 없고 농담이라고 말하는 데 이조차 인권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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