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소득주도 성장의 기억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11 16:17

수정 2018.09.11 16:30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 가정의 살림살이는 정말 하루하루가 달랐다. 1985년 9월 '프라자 합의'로 시작된 엔고는 우리나라 수출에 날개를 달아줬다. 1985년 달러당 240엔대에 달하던 엔화는 2년 뒤인 1987년 말에는 절반 수준인 130엔까지 떨어졌다. 덕분에 우리나라 수출은 1985년 303억달러에서 1988년 607억달러로 두배가 뛰었다.

수출만 호황이 아니었다.
수출이 잘되니 기업에 돈이 돌고 내수가 폭발했다. 1987년 6·29 민주화 선언은 내수를 벌떡 일으켜세웠다. 정치에서의 민주화는 노동운동에서도 봄을 불러왔다. 연일 여기저기서 노사분규가 일어나고 그 때마다 임금은 수직상승했다. 기업들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이 워낙 많으니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줘도 기업 경영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임금이 오르니 소비가 폭발했다. 소비가 늘어나니 물가가 오르고 다시 임금이 올랐다. 증시도 연일 상승을 거듭했다. 같은 기간 주가는 163포인트에서 1000선을 돌파했으니 그 당시 경제는 정말 올 여름 무더위보다도 더 뜨거웠다.

정부도 흥청댔다. 해외수출 호황과 기업들의 폭발적인 성장에 세수가 넘쳐났다. 넘쳐나는 재정은 결국 복지로 흘러들어갔다. 전국민 의료보험 실시, 국민연금 도입, 최저임금제 도입 등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될 굵직한 복지정책 이때 나왔다. 가히 우리나라 전성기였다. 이렇게 맞은 호황 덕에 우리나라 노동자의 임금은 1987년부터 10년동안 무려 4배가 올랐다.

이명박 정부때 경제수석을 지냈던 김대기 씨는 수십년간 나라를 위해 일했던 자신의 회고록을 담은 '덫에 걸린 한국경제'에서 우리나라의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정책기조로 삼고 그토록 목매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은 아마도 이 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 하다. 소득주도 성장은 포스트 케언지언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과 이들 가계소득을 올려줘 소비를 활성화시키고 이를통해 기업투자가 늘면 생산이 확대되고 다시 소득이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된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는 대내외 경제환경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국내경기가 팽창을 계속할때나 실현 가능한 개념이다.

세계 무역질서를 뒤흔드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카리스마와 천재성을 지닌 북한의 김정은, 주변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중국몽을 외치며 새로운 황제로 등극한 시진핑, 일본 역사상 이토 히로부미 이후 가장 유능한 총리로 평가를 받는 아베까지 세계 곳곳은 빅보이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면서 어느때보다 시끄럽다. 과거 20년 전 민주화운동으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부문이 봄을 맞던 시기와 지금은 너무도 다르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정의롭기만 한 정책'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52시간 근무제' 등 최근 논란을 빚는 정책은 모두 국민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좋은 말도 순서가 뒤바뀌면 진심이 전달되지 않고 심지어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법이다.
배가 고프면 예민해지고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kwkim@fnnews.com 김관웅 부동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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