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학교에 휴대폰 들고 오는 것을 전면 금지한다. 학교에서는 절대 휴대폰을 쓰는 일이 없도록 해라." 어느 날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선언했다. 수업 중 게임을 하는 아이도 종종 나왔고, 수업시간에 휴대폰이 올려 수업을 방해하는 일도 잦아 학교에 휴대폰을 들고 올 수 없도록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반발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부모님께 연락하는 데 필요하기도 하고, 수업 중 필요한 경우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수업의 효율도 높일 수 있는데 무작정 학교에 휴대폰을 반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게 아이들 의견이다. 학부모들 의견도 엇갈렸다. 일부는 찬성하는 의견도 있었고, 일부는 수업시간에는 게임을 참을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학교의 몫 아니냐고 문제 제기를 하는 측도 있었다.
선생님은 며칠 뒤 다시 아이들을 모아놓고 "그동안 학교에 휴대폰을 갖고 왔던 친구가 얼마나 되는지, 금지된 휴대폰을 왜 갖고 왔었는지, 휴대폰을 갖고 와서는 게임을 했는지 인터넷 검색을 했는지 소상하게 적어 내라"고 했다.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혹시 솔직하게 적어내고 학교 방침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렇다고 안 적어낼 수도 없으니 아이들은 대충 거짓말을 적어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암호화폐공개(ICO) 실태조사를 하겠다며 관련기업들에 질문서를 발송해 업계가 술렁거리고 있다. 국내에서 ICO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거나 계획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이 금감원의 질문지를 받았다고 한다. 금감원은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사실 확인 절차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실태조사를 기획한 금감원이 크게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아닌지 다시 생각해줬으면 한다.
우선 질문지 답변으로 시장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어떤 형태든 ICO를 금지한다고 선언해 놓은 상태다. 그렇다면 기업들에 위법행위를 자수하도록 질문지를 보낸 셈이 되지 않겠는가. 법을 어긴 사람이 질문지에 솔직히 답할 것이라고 정부가 믿는다는 말인가.
게다가 금융정책 감독기관인 금감원이 실태조사에 나선다면 무엇이라도 정책을 만들려는 것 아니겠는가 싶다. 실태조사 결과가 시장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할 것이 뻔한데, 정확하지 못한 시장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정책도 비뚤어지지 않겠는가 걱정된다.
금감원이 실태조사에 나선 이유가 시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책상 위에서 e메일 몇 통 보내는 것으로는 안된다.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드는 기반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다.
위법행위 적발용이라면 목적부터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위법의 근거를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결국 목적도, 방향성도 명확하지 않은 이번 실태조사는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울까 걱정된다. 그래서 재고해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블록포스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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