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시리즈-우리함께]<11>청년 화상 경험자 모임 ‘위드어스’ 최려나 공동대표
-"내가 살아난 흔적을 숨길 필요가 없었어요"
-11살때 가스 폭발로 몸 95%에 3도 화상 입어
-3년전 ‘위드어스’ 만들고 청년 화상 경험자와 거리로
-"내가 살아난 흔적을 숨길 필요가 없었어요"
-11살때 가스 폭발로 몸 95%에 3도 화상 입어
-3년전 ‘위드어스’ 만들고 청년 화상 경험자와 거리로
고통이 인간에게 주어진 나쁜 것이라면 화상은 가장 나쁜 것일 테다.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 화상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극에 달한 괴로움을 준다. 사나운 흔적도 남긴다. 때문에 화상은 인간이 겪는 지독한 '불운'처럼 느껴진다.
최려나 위드어스 공동대표(26)는 '화상 경험 청년 모임'을 이끈다. 그는 11세 때 가스폭발 사고로 몸 9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쇠가 구부러지는 열 속에서 최 대표는 살아남았다. 그는 자신을 '생존자'라고 칭한다. 누구도 자신에게 사고가 닥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듯 최 대표도 그랬다. 우리에게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떨까. 최 대표와 대화를 나누며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는 그런 우리에게 말한다. 자신이 웃을 수 있기까지 수많은 도움이 있었다고. 그 도움이야말로 계속 살아남는 '희망'이 되었다고.
■화상 입은 사람, 본 적 있나요
거리에서 그을린 피부를 별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화상 경험자는 어딘가 존재한다. 최 대표 역시 모자, 마스크 없이 거리를 나선 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는 대학교 2학년이던 지난 2015년 가을,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 화상 경험자 모임 '피닉스 소사이어티'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저는 제가 화상에서는 1등인 줄 알았어요. 피닉스 모임에는 저보다 (상처가) 심한 분이 많았어요. 의족을 했지만 미니스커트를 입은 화상 환자를 보며 깨달았어요"라고 최 대표는 말했다. 그는 그제야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내 상처가 자랑스럽다'고.
전 세계에서 모인 화상 경험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드러내는 걸 보며 최 대표도 모자를 벗었다. 그는 "난 도대체 무엇을 가리려고 그렇게 힘들게 살았는지 부끄러웠다"며 "더 이상 내가 살아난 흔적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피닉스 소사이어티는 말 그대로 불사조처럼 불에서 살아난 사람을 말한다. 그들을 서로를 생존자라고 부른다. 최 대표는 한국에도 화상 경험자 모임 필요성을 느껴 2016년 '위드어스'를 만들었다. 위드어스는 '우리 함께'를 뜻하는 영어 'With Us'를 그대로 옮겼다.
위드어스는 지난 6월 청계천을 걸으며 캠페인을 벌였다. 화상 경험자들이 외모와 다른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거리를 걷기 위해서였다. 상처를 흉하다고 여겨 가리기 급급하던 화상 경험자들이 밝은 빛 속으로 걸어갔다.
■병실에서 보낸 10대, 40여차례 수술
최 대표가 빛 속에 서기까지 무수한 그림자가 있었다. 그는 11세 때부터 병원을 전전했다.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몸 5%만 건강한 피부가 남아 인조피부를 이식했다. 성장기 키는 자라는데 피부는 그대로다 보니 뼈에 변형이 왔다. 그는 "앉지도 서지도 못 할 정도로 피부에 수축이 와서 병원에 누워 있었다. 그 때가 제일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수술, 고통보다 힘든 건 텅 빈 시간이었다. 그는 "가만히 누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많았다.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는데 초등학교 이후로 학교를 가지 못해 뒤처진다는 생각만 들었다"며 "10대 시절 남들과 공유할 추억이 없다"고 말했다.
■지선아 사랑해, 이지선 교수와 만남
최 대표는 "처음에는 나도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며 "내가 나를 못 받아들이니까. 내가 뭔가 잘 못 한 사람 같고 밖에 나오면 안 되는 사람 같았다"고 어지러웠던 경험을 꺼내놨다.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선 거울이 필요한 법. 그 거울이 앞서 고통을 겪은 선배라면 더 좋다. 이지선 한동대 교수는 최 대표에게 희망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책 '지선아 사랑해' 저자이기도 한 이지선 교수 역시 화상 경험자다. 최 대표는 얼굴에 화상을 입었는데 모자와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 교수가 멋져 보였다.
최 대표는 "지선 언니한테는 내가 수술하면 얼마나 힘든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는 마음이 있다"며 "그분이 걸어가는 길을 따라가는 거 같다. 그분처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누군가가 애쓴 흔적은 희망이 된다. 최 대표도 이지선 교수가 자신에게 그랬듯, 화상 경험자 어린이를 상대로 친구가 되어준다. 그는 한강성심병원 화상어린이캠프 멘토로 참여한다.
최 대표는 "(고통 받는 아이들에겐) 누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 화상 어린이들을 만나 어떻게 견뎠는지 경험했는지 이야기 한다"며 "아이들이 조금씩 몸과 마음이 열리고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행복이 있다"고 말했다.
■희망, 희망, 그리고 희망
신화 이야기 하나. 제우스는 인간에게 나쁜 온갖 것을 담은 항아리를 보냈다. 호기심 많던 판도라는 항아리 뚜껑을 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긴다. 항아리를 열자 고통, 질병과 같은 게 빠져나갔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건 '희망'이었다.
최 대표가 불길 속에 있던 날 어머니도 그 자리에 있었다. 어머니는 생을 다했고 최 대표는 살았다. 짐작할 수조차 없는 고통 속에서 그가 가까스로 부여잡은 건 희망이었다. 그 희망은 매주 자신을 병문안 오는 교회 성도들이었다.
"하나님은 내 다친 모습이라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까. 지금 이 모습을 사랑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빨리 병실에서 일어나 교회 언니 오빠들과 같이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게 소망이고 희망이었다"고 최 대표는 말했다.
최 대표는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올해 2월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결정한 진로다. 돌아가신 어머니 함자는 이화. 대학 이름과 같다. 졸업식 때 최 대표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불 화(火)와 꽃 화(華)
위드어스 명함에는 꽃이 새겨져 있다. 화상(華狀), 꽃을 닮은 형상이라는 뜻이다.
최 대표는 "화상 때문에 겉모습이 달라졌다. 친구들이 못 알아보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그대로 인정해주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겉모습이 달라져도 너라는 사람은 달리지 않는다고 말해주던 사람이 있었다"고 전했다.
최 대표에겐 곁에 있던 사람들이 희망이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선 이런 대화가 나온다. '희망은 좋은 거예요.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그는 "아무도 제가 살아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직 세상에 제가 할 일이 남아있다는 말인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최 대표에게 남은 건 불이 아닌 희망이었다. 꽃 피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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