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다보스포럼, FII'는 파행 불가피
그러나 이 '사막의 다보스 포럼'으로 부르는 '미래투자 이니셔티브(FII)'는 블랙록, 블랙스톤, JP모간체이스 등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규모가 크게 쪼그라들게 됐다.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반정부 언론인 카쇼기가 살해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사우디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을 부르면서 사우디가 타격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 "살인 무뢰배들의 소행일 수 있어"
1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카쇼기 사태에 대한 입장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사우디 살만 국왕과 전화통화를 했다면서 살만 국왕이 카쇼기 실종과 관련해 사우디 정부는 어떤 책임도 없음을 확실히 했다고 사우디 측을 두둔했다. 그는 이어 카쇼기 실종은 '살인 무뢰배들(rougue killers)'이 저지른 일일 수 있다고 밝혔다. 출구전략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 일이키기에 충분한 발언이다.
트럼프는 이와함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사우디에 파견해 진상을 '철저히 파헤치도록(get to the bottom)' 했다.
카쇼기 실종 연루를 부인하는 사우디 왕정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절차로 보인다.
미국이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가운데 제일 처음 의혹을 제기했던 터키도 강경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섰다.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은 이날 사우디와 터키 합동 조사단이 꾸려져 사건을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카쇼기가 사우디 영사관 내에서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한 불만을 나타냈지만 사우디와 잇단 접촉을 통해 사건을 무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멜부트 카부소글루 터키 외교장관은 "확실한 증거를 보기 전까지는 어떤 단정도 할 수 없다"면서 사우디 측이 카쇼기를 살해했다고 선언하기 이르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러나 조사는 사건을 덮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영사관 앞을 지키던 촬영진 카메라에 양동이와 대걸레로 가득찬 손수레를 밀고 영사관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청소부들 사진이 찍힌 뒤 터키 조사관들이 도착했다. 범행 흔적을 지우고 난 뒤 터키 조사관들이 도착했다는 의심이 가능한 정황이다.
▶ 사막의 다보스 포럼 파행
정치적으로 논란을 봉합하려는 시도가 보이고는 있지만 사우디 왕정에 대한 국제 투자자들의 불신은 깊어지게 됐다.
집권 초기 왕족, 고위관리, 기업인 등을 부패혐의로 구금하는 전제왕정의 실체를 드러낸데 이어 이번에는 반정부 언론인 피살 의구심까지 불러일으키면서 사우디가 추구하는 미래에 대해 투자자들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 경제개혁을 들고 나온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관하는 '사막의 다보스 포럼'이라고 부르는 FII가 차질을 빚고 있다.
사우디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월스트리트의 주요 인사들이 포럼 불참을 선언했다.
헤지펀드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최고경영자(CEO)가 불참을 통보했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 역시 포럼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JP모간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겸 CEO도 포럼에 불참하기로 했다.
월가 거물인 이들은 특히 사우디 왕정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핑크는 사우디 국부펀드 경영진인 야시르 알 루마이얀에게 정기적으로 세계 경제 브리핑을 하고 있고, JP모간은 사우디 금융거래에 관한 자문사이자, 자금공급 책임을 맡고 있다.
블랙스톤은 지난해 사우디 국부펀드와 공동으로 주로 미국에 투자하는 4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펀드를 설립했다.
미 중부사령관 출신으로 지금은 사모펀드 KKR 회장인 데이비드 피트레이어스도 불참을 선언했다.
피트레이어스는 그저 참석만 하는 이들 3인방과 달리 연설도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FII 측은 그러나 포럼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살만 왕세자의 사우디에 대한 의구심 증폭
카쇼기 실종 사태는 실권자인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살만은 보수적인 왕국 사우디를 현대화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과감한 경제개혁도 추진해 국제 투자자들의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가 감독하는 사우디 정부는 호전적인 외교정책을 펴고 있고, 어떤 반대도 용납하지 않는 전제적인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그 와중에 터진 이번 카쇼기 사태는 사우디 국영 석유업체 사우디아람코 상장이 차질을 빚는 가운데 사우디 왕정에 대한 국제 투자자들의 신뢰를 밑바닥부터 흔들고 있다. 살만 왕세자의 야심찬 경제개혁이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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