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1978년부터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 주도로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이 벌였던 문화대혁명의 대혼란 시대와 결별을 선언했다. 이어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해 경제 발전을 핵심 목표로 한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개혁노선은 1989년 톈안먼 민주와 시위 무력진압 사태가 발생하고, 1991년 사회주의 종주국이던 소련마저 붕괴하자 중국 안에서 체제 불안을 우려한 보수파들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덩샤오핑은 1992년 경제 개발 선도 지역인 광둥성과 상하이 등 남부지역을 시찰하면서 개혁개방 확대를 주문해 동력을 끌어모았다. 당시 그가 남부지역을 돌아보면서(南巡) 발언을 했다(講話)는 뜻에서 중국에서는 이를 '남순강화(南巡講話)'라고 부르며 좌초할 뻔한 개혁개방의 동력을 유지한 역사적 행보의 상징으로 삼았다.
시진핑 주석의 이번 광둥성 시찰 역시 대내외적 악재에 빠진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재도약하기 위한 상징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덩샤오핑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광둥성 시찰에서 개혁개방 의지를 밝힌 데다 개혁개방의 상징인 자유무역시범구 건설도 적극 주문하고 나섰다. 시 주석은 최근 자유무역시범구 건설과 관련한 중요 지시를 통해 "지난 5년간 여러 지역의 자유무역시범구는 중대한 진전을 보였고 이와 관련한 제도적 혁신 성과가 전국에 퍼짐으로써 개혁을 전면적으로 심화하는데 시범적인 역할을 발휘했다"며 "미래를 향해 깊이 있게 연구해 자유무역시범구를 새 시대 개혁개방의 새로운 고지로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무역시범구 건설을 강력히 추진해 개혁개방의 새로운 고지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 주석의 이번 행보가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효과를 재연할지 미지수다. 덩샤오핑 당시 중국 경제는 바닥에서 위로 치고가려는 시기였다면 지금은 G2위상에 올라서 있어서다. 특히 개혁개방 의지 면에서 덩샤오핑과 시진핑의 관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덩샤오핑이 중국경제의 도약을 위해 개혁개방에 적극적인 힘을 실었던 반면, 최근 중국의 행보는 외적으론 개혁개방과 자유무역을 강조하면서도 내적으론 반대 움직임도 일고 있다. 민영기업이 국영기업들에 밀려나는 이른바 '국진민퇴'(國進民退) 논란이 대표적이다. jjack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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