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복지정책의 트레이드마크 격인 아동수당이 지난 9월 첫 시행된 지 두어 달이 지났다. 그런데 벌써부터 대상연령을 6세에서 12세로 확대하고 지원액도 월 10만원 이상으로 상향하자는 논의가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원래 아동수당은 저출산 대책으로 고안된 게 아니다. '아이라는 미래의 세수원천을 생산하는 가정에 그 비용(양육비)의 일부를 보조하는 것이 세수형평의 원칙에 맞다'는 데서 확대된 제도다. 그런데 제도가 들어오자마자 출산대책으로 부상하더니 퍼주기 정책의 타깃이 되고 있다. 아동가족전문가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일진대 필자의 속내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두 가지 면에서 우려가 크다. 첫째, 아동수당과 같은 복지정책을 정치논리로만 접근하는 것은 위험천만하고 부작용이 많다는 점이다. 한 예만 보자. 우린 지난 몇 년 동안 보육비 중단 사태를 우려하는 뉴스를 단골로 접했었다. 애들 돌보고 원 운영하는 일만으로도 일각이 아쉬운 어린이집 운영자들이 걸핏하면 원비 지급보장을 촉구하며 데모판에 나서는 모습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런 볼썽사나운 상황을 초래한 배경에는 복지부 등 관계부처가 보육료 지급의 책임을 서로 미루며 벼랑끝 게임을 벌인 탓이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정치권의 경쟁적인 복지 포퓰리즘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재정한계나 세수전략을 고려하지 않고 각 당이 경쟁적으로 무상보육을 고집하면서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인데, 그런 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재정확대만 결의하지 말고 제발 세입구조도 같이 토론해주었으면 좋겠다.
둘째, 아동수당 같은 정책은 저출산 해결에 최대한 유용하게끔 정밀하게 설계돼야 하는데 작금의 확대논의에는 그런 관점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만약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재정투입이 수십년간 일정한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가정해보면 어느 한 해에 몰리지 않게 조절하는 로드맵이 긴요하다. 지난 몇 년간 우리의 경험을 보면 쉽게 수긍이 가는 문제다. 보육예산을 매년 몇천억원씩 확대한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합계출산율이 올라갔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재정여력 없어 예산확대를 멈추자 출산율이 바로 추락하는 상황이 발생했었다. 조금씩 나누어 매년 재정확대를 했더라면 출산율 하락 속도가 그토록 빠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작금의 재정투입 논의도 한탕주의에 머물지 말고 일정표를 만들어 추진했으면 하는 이유다.
한편, 아동가족 예산을 계속 늘려나가면 저출생―여성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저출산이라는 표현 대신 이 말을 사용하고자 함―문제는 해소될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의 극단적인 저출산은 실업과 노후빈곤에 대한 대비와 같은 기초복지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로 빚어진 돌봄위기를 맞이해, 말하자면 이중위기를 당해 나타나는 더 극단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다른 선진국들은 대략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실업과 의료, 노령과 빈곤을 대비하는 복지 인프라 장착을 끝낸 상태에서 여성 노동자가 보편화하는 이른바 '세컨드 시프트'를 맞이했고, 그 때문에 기초복지는 손댈 필요 없이 돌봄위기만 해소해주고도 출생률 하락을 연착륙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린 다르다. 여전히 기초복지가 성글고 불완전한 나라다. 경험적 사실에 비춰보더라도 자녀 출산은 자신의 생애 전망이 좀 안전하게 수립돼야 비로소 엄두를 낸다. 실업자가 되어도 살 수 있고, 늙으면 연금에 기댈 수 있고, 뭐 그래야 아이를 낳을 마음도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앞으로는 아동가족예산은 물론이고 복지지출 전반을 출생률의 관점에서 서로 유기적 관계 속에 재구조화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이재인 (사)서울인구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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