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리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한지 68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전쟁기념관은 11월 호국 인물로 고 조관묵 경감을 선정했습니다. 조 경감은 6.25전쟁 당시 국군의 북진이 본격화하던 1950년 11월 춘천경찰서 양구파견대 중대장으로서 4000명의 북한 인민군 패잔병의 습격으로부터 강원도 양구 주민 2000여명을 보호하다 동료 30명과 함께 전사했습니다.
조 경감 뿐만 아니라 수많은 경찰관들이 6.25 전쟁에서 조국과 국민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6.25 전쟁 당시 사망자 1만618명, 부상자 6760명 등 전 경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만7378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희생에 비해 경찰의 활약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께 북한 인민군 제945부대 선발대가 강원도 정동진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이때 정동진 해안초소에서 경비 근무를 서던 강릉경찰서 전대욱 경사가 적 1개 중대가 상륙하는 것을 발견하고 대응하다가 그 자리에서 전사했습니다.
그로부터 1시간 후인 새벽 4시께 북한군 10개 사단 병력이 일제히 포격과 총격을 개시하면서 본격적인 6.25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6.25 전쟁의 최초 전사자는 경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50년 7월 적의 대대적 공세가 이어지자 강원도 비상경비사령부는 화력발전소가 있는 영월을 탈환하기 위해 김해수 경감을 대장으로 47명의 결사대를 편성합니다. 북한군 대병력의 포위 속에서 전투를 진투지휘하던 김해수 경감은 적의 박격포탄에 맞아 전사했고 이어 결사대를 지휘하던 석상익 경위도 응전 중에 전사했습니다. 이 전투로 아군 24명이 전사하고 7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73명의 적을 사살하며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전쟁기념관을 이를 기념해 지난 7월 이들을 전쟁영웅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낙동강 전선에서도 활약하며 함안·다부동 전투에서 수많은 경찰관의 희생 끝에 낙동강 전선 방어에 기여했습니다. 오늘날 그곳에는 경찰 충혼탑과 위령비가 그들의 희생을 기리고 있습니다.
흥남철수에도 용감한 경찰관들이 있었습니다. 중공군의 파죽지세에 맞서 경찰관부대는 기관총 진지를 구축하고 온몸으로 적의 공세를 막아내며 국제연합(UN)군의 후퇴와 양민들의 피난을 도왔습니다.
'장진호 전투'로 알려진 이 전투에 대해 미국 해병대원 출신으로 참전했던 마틴 러스는 베스트셀러 '브레이크 아웃'을 통해 "그곳에는 훈련돼 군기가 있고 상당한 전투력을 가진 한국 경찰부대가 있었다"고 소개했습니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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