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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안뺏기려는 자본가, 비웃는 노동자.. 어디서 본듯하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16 17:44

수정 2018.12.16 17:44

연극 '호신술'
[리뷰] 안뺏기려는 자본가, 비웃는 노동자.. 어디서 본듯하네

"워낙 시절이 고약해서 이런 개고생을 하는구나. 어떻게 없는 놈일수록 똑같이 노나먹자는 수작만 한담?"

1930년대 어느 한가한 토요일 오후 여러 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상룡은 온 가족을 한데 불러 모은다. 김상룡의 직조공장 노동자 놈들이 파업을 하기 시작한 것. 신문을 보니 요새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지도 않으면서 똑같이 나눠먹자는 수작만 하고 예전에는 몇몇 놈들만 그러던게 요새는 떼로 몰려다니며 폭력적이어서 기업을 하는 선량한 지주들을 무참히 공격을 하기도 한다는 얘기에 간담이 서늘해진 것. 어쩌면 신문에서 본 공장장 폭행사건이 내 일이 될 것 같아 두려운 마음에 김상룡은 호신술을 배워 자신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넓디넓은 집 한 켠 큰 방에 보료를 깔아놓고 난리법석 속에서 온 가족들을 모았다. 저번에 배워보니 몸을 다칠 수도 있단 생각에 경성에서 잘나가는 의사 양반을 부르고 변호사도 불러 앉혀놨다. 경성에서 꽤나 잘나간다는 윤상천을 불러서 호신술을 배우기 시작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상시엔 공사다망해서 운동을 할 시간도 없고 그러다 보니 몸보신이라도 잘 해야 한다 생각해서 매일같이 닭고기로나마 건강을 지키려 했더니 경성에서 체내에 가장 지방질을 많이 보유한 가족이 된 것이다.

오히려 호신술을 배우는데 더 얻어터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시대'를 맞이했으니 어쩔 수 없다. 망할 노동자 놈들. 언제나 나라는 선량한 자본가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 윤상천에게 지폐를 뭉텅이로 쥐어주고 배우는 호신술은 오히려 폐가망신을 시키려나 보다. 이리저리 던져지니 집기가 박살나고 벽이 무너진다. 그 순간 공장의 노동자들이 김상룡의 집으로 들이닥친다. 불 다 꺼놓고 쥐죽은 듯 숨어서 호신술을 연습해도 별 수가 없나보다. 망했다.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호신술'(사진)은 일제시대이자 세계공황기인 1930년대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의 대립을 풍자한 작품이다.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출신의 작가 송영의 대표작으로 아이러니한 설정과 통렬한 풍자를 통해 부패한 자본가들의 모습을 꼬집고 있다. 두 계층의 대립을 그려내면서도 핍박받던 인물들의 승리를 암시해 당대 노동자들에게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이 작품이 발표되고 80여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혀 먼 얘기 같지 않고 오히려 관객의 공감을 크게 사는 것은 그때에도 있었던 대립이 이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은 오는 24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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