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한 총영사관이 미국 시민권을 가진 직원을 미국법에 따라 해고했지만 이같은 해고는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오상용 부장판사)는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05년 9월 미국의 한 총영사관에 민원행정 보조원으로 채용됐다. 근로계약상의 문제가 생기면 대한민국 법에 따라 대한민국 기관이 관할하기로 한 조건이었다. A씨는 2010년 11월 미국 국적을 취득한 뒤에도 이 같은 조건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그러던 2016년 7월 A씨와 B영사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 A씨가 업무용 컴퓨터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려고 민원실의 자기 자리를 비운 사이 민원 전화가 걸려와 자동응답기 내 B영사 번호로 연결이 됐다.
B영사는 A씨를 찾아 "왜 무단으로 자리를 이탈했느냐"고 질책했고, A씨가 '업무상 자리를 비운 것'이라고 항의하자 다음 날 경위서를 작성하라고 직무 명령을 내렸다.
며칠 뒤 B영사는 A씨를 불러 미국 시민권자의 경우 근로 계약의 준거법을 대한민국 법이 아닌 미국법으로 바꾸기로 했다면서 새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요구했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2017년 5월 총영사관은 A씨를 '근무지 무단이탈' 등의 사유로 해고했다.
A씨는 "총영사관이 근로관계 준거법을 미국 법으로 바꾼 것은 자신을 쉽게 해고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법에 따라 해고 정당성을 판단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법원은 A씨의 주장처럼 근로계약상의 준거법을 미국법으로 바꾼 건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B영사는 A씨와 다툰 후 그를 '골치 아픈 직원'으로 여기고 근로관계를 용이하게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준거법 변경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A씨가 미국 국적을 취득한 이후로도 근로관계에 적용된 준거법이 한동안 바뀌지 않은 점이 핵심 근거였다.
재판부는 "만약 피고 주장처럼 법령 적용의 모순이나 저촉을 방지하기 위해 준거법을 변경한 것이라면 A씨가 미국 국적을 취득한 2010년이나 그 직후에 이를 변경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를 해고한 것도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총영사관이 징계 사유로 든 4가지 사유 중 한 차례 조기 퇴근과 옷에 안내 명찰을 착용하지 않은 점은 인정되나, 해고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라고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A씨가 이미 무기계약직 신분을 얻었다는 점도 인정하며, 그가 해고되면서 받지 못한 임금도 모두 국가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jasonchoi@fnnews.com 최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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