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일상만사] 잇따른 체육계 ‘미투’도 결국 ‘권력형 성범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17 14:42

수정 2019.01.17 14:49

'소녀의 꿈'을 저당 잡아 '흑심' 품은 지도자들
'아는 사람', '학원 관계자', '재범'... 딱 떨어지는 성범죄 공식
재발방지 대책 쏟아져...  이번엔 달라질까
▲ 한 여성시민단체가 조재범 코치 성폭력 사건 의혹 관련 진상규명 및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 재발 방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한 여성시민단체가 조재범 코치 성폭력 사건 의혹 관련 진상규명 및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 재발 방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조재범 코치가 범행 때마다 '운동을 계속할 생각이 없느냐'는 협박과 무차별적인 폭행을 했다"(1월 8일 심석희 선수)

“(선수와 코치는) 단순히 사제관계라기보다는 코치가 무엇을 하라고 하면 선수는 무조건 들어야 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1월 15일 신유용 씨)

최근 체육계에서 잇따른 '미투‘(Me Too) 운동이 벌어진 가운데 이들 범죄 유형이 ’권력형 성범죄‘라는 점이 주목된다. 체육계 성범죄는 지도자와 선수 간 엄격한 위계 구조를 갖고 학연과 인맥 등 각종 연줄로 얽히고설킨 카르텔 속에서 외부의 감시망 없이 일어난 범죄였다.

특히 체육 특기생들은 어린 나이에 선수와 코치 또는 감독(이하 지도자) 관계에서 만나 중·고등학교의 합숙소 생활 속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관리받고 있다. 지도자들은 합숙소에서 교장 등 학교 관리자의 눈 밖에서 사실상의 권력자로 군림해 왔다. 그러다 지도자들이 딴마음을 품고 ‘소녀의 꿈’을 저당잡아 폭행과 성폭력을 자행했다.


심석희 선수의 경우, 고등학교 2학년인 지난 2014년 여름부터 평창 올림픽 개막 두 달 전까지 4년에 걸쳐 조 전 코치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고 폭로했다.

심 선수는 조 코치가 자신에게 절대복종하도록 강요했으며, 심 선수는 선수 생활을 중단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가족과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신유용 씨 또한. 2011년 고등학교 유도부 선수 시절 A코치가 자신의 숙소로 불러 범행을 저질렀다. A코치는 신 씨를 매트리스에 누우라 한 뒤 강제적으로 성폭행했으며 ‘너 막 메달을 따기 시작했는데 이거 누군가한테 말하면 너랑 나는 유도계에서 끝“이라고 협박했다.

이후 신 씨는 A코치에 수시로 불려 다녀야 했고, ‘운동을 계속하려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누구한테 말하면 그 사람 말대로 ‘유도계를 떠나야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조용히 하면 된다’ 그렇게 마음먹었다”라고 회상했다.

신 씨가 코치의 범행 사실을 털어놓게 된 데는 자신의 전부였던 유도를 그만두고 나서였다. 그래서 신 씨는 현역 선수임에도 코치의 범죄 사실을 고백한 심 선수가 ‘고맙다’고 했다.

■ '아는 사람', '학원 관계자', '재범'... 딱 떨어지는 성범죄 공식
전문가들은 각종 성범죄에는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가령 성폭력 범죄자들은 한 번이라도 안면이 있는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압도적이며, 피해자가 청소년인 경우에는 가해자가 친인척이거나 학교·유치원·학원 등의 관계자의 비율이 높다고 한다. 또 아동 피해자의 경우에는 친인척의 비율이 과반의 확률을 보였고, 그다음이 동네 사람일 수 있었다. 또 한 번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재범 위험성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는 것도 공통된 견해다.

이를 볼 때 최근 체육계 성범죄는 이와 딱 떨어진다. 가해자들은 ‘아는 사람’이었으며, 피해자들은 청소년 시기에 성폭력을 처음 시도한 ‘학원 관계자’들이었다. 또 이들은 재범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 김지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성폭력 범죄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인식하는 가정이나 직장, 학교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아는 사람에 의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최근 성폭력범죄의 신고율이 높아지고는 있으나 심각한 성폭력 범죄인 강간과 강간미수의 경우에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불과하여 대부분의 성폭력범죄는 사건화 되지 않은 채 묻혀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 심석희 쇼트트랙 선수를 비롯한 선수들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재범 전 코치의 모습. /연합뉴스
▲ 심석희 쇼트트랙 선수를 비롯한 선수들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재범 전 코치의 모습. /연합뉴스

■ "합숙소 폐지하고 여성 지도자 늘어나야"
정치권에서는 체육계 지도자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체육계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성범죄를 저지르고 제명된 지도자들이 여전히 현직에 머무르고 있는 점과 관련 대한체육회와 이를 관할하는 문화체육부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제기됐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부모들이 돈을 거둬 운영하는 합숙소 운영은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고, 합숙소는 ‘학교 안의 섬’이다. 그런데 2019년 현재에도 합숙소는 무늬만 생활관으로 바뀐 채 여전히 학교 안의 섬으로 운영되고, 그 섬을 지배하는 코치와 감독은 교장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절대적 권력자”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절대적 권력자에게 학생선수들은 오로지 복종만 있을 뿐 성폭력이나 폭행 등 어떠한 인권유린에도 저항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메달이나 승리보다도 국민 건강이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스포츠클럽의 활성화를 주장했다.

바른미래당은 논평을 통해서 테니스 선수 김은희 선수 등의 사례를 들며 “사건들의 과정을 보면 누구보다도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피해 선수들을 도와주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대한체육회의 존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또 “끼리끼리 감싸주고 순간만 모면하면 그다음엔 버젓이 선수들을 가르치는 이 악습의 중심에 대한체육회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4년 대학 빙상팀 코치를 하다 제자를 임신까지 시킨 전 국가대표 코치 A씨, 2006년 선수 3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은 쇼트트랙 전직 감독 B씨 등은 협회에서 제명된 이후에도 민간업체에서 지도자로 일하면서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이에 따라 성범죄를 저지른 지도자들은 아예 체육계에서 퇴출시키자는 법안들이 국회에 추진되고 있다.
안 의원은 성범죄를 저지른 체육지도자들이 ‘원스트라이크’로 퇴출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운동선수 보호법’을 발의했다.

이 밖에 박찬숙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운영본부장은 “여성 선수들에게는 여성 지도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조건 여성 지도자로 전원 교체하자는 게 아니라, 남녀 성비 균형을 맞추자는 뜻”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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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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