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의원 "대학원생은 가장 '을'…대학 자율에 맡겨선 안돼"
#A씨의 지도교수는 스승의 날이나 명절 때마다 고급 다과, 건강 보조 식품, 상품권 등을 요구했다.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날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내색을 하며 눈치를 줬다. 지도교수의 단골멘트는 "돈 나갈 데가 많아서 형편이 어렵다" "담배 살 돈도 없는 지경이다" 등이었다. A씨는 견디다 못해 이 사실을 대학에 알렸으나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B씨네 연구실은 대학원생의 인건비 통장과 체크카드를 지도교수가 관리한다. 한 달에 들어오는 인건비 총액은 150만원 안팎인데 이중 1/3정도만 대학원생들에게 지급한다. B씨는 몇십만원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지도교수는 대학원생에게 지급하지 않은 인건비를 주유비, 식비, 교통비 등 개인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C씨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인권 전담기구가 있는지 문의했다. 이 정도 일이 문제가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 지도교수는 C씨에게 '자퇴하는 게 낫겠다'며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후 C씨는 연구실 내에서 이뤄지는 교육 과정에서 배제됐고 논문지도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C씨는 지도교수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졸업까지 한 학기 미뤄진 상태다.
위 내용은 대학원을 대상으로 한 노동인권단체 '대학원생119'에 제보된 갑질 사례다. 지난 1월 7일 만들어진 '대학원생119'는 출범 2주만에 168명의 회원이 가입해 대학원에서 겪은 갑질 등을 고발했다고 밝혔다.
'대학원생119'는 "대학교수가 진학, 학위, 진로 등 대학원의 인생을 결정할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비리 제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학원생은 '직장'이 아니라는 편견 때문에 대학원생 상당수는 갑질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원생이 교수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은 통계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018년 9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철희 의원실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대학원 석·박사과정생 및 박사 후 과정생 등 197명의 연구원을 대상으로 '교수 갑질' 관련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4.1%(146명)는 대학원에 갑질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또 응답자 중 39%(77명)는 교수의 우월적 지위와 인권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꼽았다.
갑질 유형에는 ▲열정페이 요구(48.2%) ▲워라벨무시(42.1%) ▲연구윤리위반(21.8%) ▲개인업무·잡무요구(38.1%) ▲인격무시·강압(42.6%) 등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이철희 의원은 "학내에서 대학원생이 가장 '을'이라는 지적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라며 "대학원생 인권 문제는 해결과정에서 청년들의 미래가 볼모로 잡힐 수 있다는 점에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내부의 일이라고 대학의 자율에만 맡기는 것은 충분한 해결책이 될수 없다"며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해결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대학원생119'는 "교수사회에 만연한 갑질과 비리의 책임은 교육당국에 있다"며 "교수의 비위 행위는 최소 15년 이상 계속되어 왔지만 학교와 교육당국은 갑질과 비리 문제를 방치해왔다. 교수갑질 근절을 위한 교육당국의 긴급 대책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갑질119'는 제보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법률 상담을 진행하고, 대학원 사회의 갑질과 비리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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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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