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걷고싶은거리. 체감온도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추위도 길거리 공연을 하는 '버스커(거리 공연자)'들의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 오후 5시가 지나자 한 손엔 앰프, 한 손엔 마이크를 든 젊은이들이 하나 둘 버스킹 존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홍대 걷고싶은거리는 '버스킹의 성지'라 불릴만큼 길거리 공연의 본고장으로 꼽힌다. 매일 저녁 다양하고 많은 공연이 펼쳐지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5m 꼴로 줄지어 보행로까지 방해하며 큰 소음을 유발하던 공연들은 모두 정리된 분위기였다. 지정된 장소에 사전 승인을 받은 5팀 가량의 버스커들이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질서정연하게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한 달 접수된 민원만 9건
지나친 소음과 무질서, 민원으로 몸살을 앓던 홍대 걷고싶은거리가 질서정연한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10일 마포구에 따르면 구청은 지난달 31일 홍대 걷고싶은거리 곳곳에 "도로상 길거리 공연금지" 현수막을 붙였다. 이 현수막에는 "이 도로는 차도이며 주말에는 보행로입니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야외전시존 앞쪽에도 "지정된 장소에서 사전예약 후 공연"이란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다.
마포구는 최근 홍대 인근에서 소음 관련 민원이 지나치게 많이 발생하자 이런 현수막들을 붙여 지정장소에서만 공연을 하도록 홍보·계도를 강화했다.
실제 비지정장소 공연, 소음, 공연으로 인한 통행불편 등 버스킹 관련 민원은 2015년 12건에서 2018년 53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2019년 1월 한 달 동안만 9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구청 관계자는 "현수막을 붙인 이후엔 아직까지 한 건의 민원도 들어오지 않았다"며 "사전예약을 어떻게 신청하는지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 중"이라고 말했다.
인근 상인과 공연자들은 이같은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홍대에서 6개월 정도 버스킹을 했다는 한 공연자는 "현수막이 붙은 뒤로 버스킹존이 아닌 곳에서 공연을 하던 버스커들이 싹 없어진 것 같다"며 "승인된 버스킹존 바로 옆에서 노래를 불러 공연에 방해가 될때도 있었는데 최근엔 그런 불편함이 없었다"고 했다.
노점상인 이모씨(57)도 "손님이 주문하는 소리도 안들릴 만큼 시끄러웠던 적도 있어 매번 피해다녔는데, 이제 여기저기서 시끄럽게하지 않아 훨씬 편하다"고 전했다.
■제재 근거 약해…봄 되면 다시?
그동안 소음에 시달려온 주민들은 아직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인근에 거주하는 김모씨(32)는 "지금은 겨울이라 버스커들이 좀 줄어든 탓도 있다"며 "날이 다시 따뜻해지면 또 홍대는 소음으로 가득찰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포구는 지난 2017년 8월부터 야외공연장을 온라인으로 예약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오픈했다. 그러나 실제로 잘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해 현장계도에 투입된 인원만 332명, 횟수는 52회에 달할만큼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승인받지 않은 버스킹으로 인한 민원은 꾸준히 늘어났다.
구청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3월부터 강력하게 단속을 실시할 예정이다. 공연장이 너무 적어 발생하는 문제라고 판단해 현재 운영되는 7개 버스킹존을 10개 정도로 늘릴 계획도 있다.
일각에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원인으로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약하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소음기준관리법에 따르면 홍대 걷고싶은 거리는 60데시벨(dB) 이상 소리가 나면 소음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주변 소음이 많은 거리 특성상 정확한 소음 측정이 불가능하고, 과태료 부과 등 제재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
구청의 한 관계자는 "밤 10시 이후 공연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강력한 제재가 포함된 시행규칙 개정을 꾸준히 요구하는 중"이라며 "현재는 경찰에 기대는 정도밖에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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