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초서 '울산교육 독립운동 100년의 빛' 첫 현판식
울산초, 보성학교, 언양초, 울산노동역사관 야학 등
울산지역 항일독립운동 교육 현장에 현판 달고 기념
현판 QR코드 통해 독립운동 자료와 독립운동가 확인 가능
울산초, 보성학교, 언양초, 울산노동역사관 야학 등
울산지역 항일독립운동 교육 현장에 현판 달고 기념
현판 QR코드 통해 독립운동 자료와 독립운동가 확인 가능
【울산=최수상 기자】 울산시교육청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인 ‘울산교육 독립운동 100년의 빛’ 현판식이 27일 울산시 중구 병영초등학교 백년동산 앞에서 개최됐다.
울산시교육청은 지난 2018년 9월부터 6개월 동안 역사교사와 외부 연구자들로 구성된 울산교육 독립운동 연구회를 운영해왔다. 이날 행사는 그동안 연구해 온 울산교육현장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처음 드러낸 자리이다.
■ 100년 전 병영초등학교에서 벌어진 만세운동
이날 기념식에 앞서 병영초등학교 교문에는 ‘울산교육 독립운동 100년의 빛’이 아로 새겨진 현판이 달렸다. 이 현판은 태극의 색을 본 따 만든 QR코드가 있어 휴대전화로 스캔해 병영초등학교와 관련된 독립운동을 현장에서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이현호 울산교육독립운동연구회장은 앞으로 1년간 차례대로 교육과 관련한 독립운동 공간에 QR코드 현판을 부착해 역사지도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QR코드 현판은 매우 간편하게 해당 장소의 사진과 자료를 얻을 수 있고 교육 분야의 독립운동가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울산시교육청이 이날 병영초등학교에서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100년 전 3.1운동이 울산에서 시작될 때 병영초등학교는 사립 일신학교였다.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시대에 교육을 통해 국권을 되찾겠다는 선각자들이 세운 학교였다.
당시 이 학교 졸업생들은 병영비밀청년회를 만든 뒤 1919년 4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병영만세운동’을 벌였다. 역사적인 병영만세운동은 당일 일신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대회를 가장해 모인 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소리를 신호로 거행됐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킨 한글학자이자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로 손꼽히는 최현배 선생도 이 학교의 졸업생이다.
이날 행사의 마지막 순서인 기념식수에서는 병영초등학교 백년동산에 100년의 기억과 다음 100년의 다짐을 담은 홍매화를 심었다. 붉은 꽃망울을 터트린 홍매화의 꽃말은 고결, 품격, 인내로 울산교육 독립운동 100년의 빛과 잘 연결된다고 시 교육청은 설명했다.
노옥희 울산교육감은 “병영초를 시작으로 올 한 해 동안 지속적으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진행할 것이며, 교육계의 항일독립운동을 발굴하여 잊혀진 역사를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울산시교육청에 따르면 5월에는 스승의 날을 맞아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일제강점기 교육자 성세빈, 서진문, 이무종 선생 등을 참스승으로 선정하여 공적을 널리 알리고 기념식을 거행한다.
■ 울산교육 독립운동의 자취 찾아나선다
6월에는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린 6.10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울산초에 현판을 설치한다. 울산초는 병영초, 언양초, 남목초 등의 학교와 함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죽음에 대한 망곡식과 더불어 학생들의 동맹휴학이 여러 차례 진행이 되었다.
8월에는 광복절을 맞아 학교 밖 항일교육운동과 관련하여 북구청이 운영하는 울산노동역사관에 현판을 설치한다. 당시 울산·울주 지역에는 35곳의 청년단체들이 있었고 대부분 야학을 운영하며 항일운동의 근거지를 만들었다. 일제의 탄압이 가장 심했던 30년대에는 농민조합, 교원노조를 만들어 일제에 대항했고 경남교원노조사건, 울산독서회사건 때는 대규모 구속과 탄압이 이어지기도 했다.
10월에는 학교가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됐던 동구 보성학교에 표지판을 설치한다. 보성학교는 성세빈 선생이 사재를 털어 설립을 했고 교사였던 서진문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노동자들을 지키는 활동을 하다 일본경찰에 구속돼 고문 받고 단식으로 항거하다 28살 나이로 순국했다.
11월에는 언양초등학교에도 표지판이 설치된다. 1929년 광주학생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언양초 학생들은 광주학생을 지지하는 격문을 살포하다 체포돼 재판을 받고 수형생활을 했다. 하지만 퇴학을 당해 학교 졸업대장에 이름을 남기지 못해 아직까지 독립운동가로 추서받지 못하고 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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