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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시티권' 침해 논란] '퍼블리시티권' 명확한 규정 없어 20년째 엇갈린 판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03 16:47

수정 2019.03.03 16:47

(上) 해외 입법화, 국내는…
유명인 재산권 분쟁에서 등장..시기·재판부별 판단 제각각
연예인 이름·사진 침해에 대해 인격권만으로 손배 책임 인정
"내 이름과 사진을 상업적으로 쓰지 마세요." '퍼블리시티권'을 한 줄로 표현한 말이다. 퍼블리시티권은 자신의 이름이나 사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주로 연예인, 스포츠 선수 등 유명인의 재산권 분쟁에서 등장한다. 그러나 국내에는 아직까지 명확한 규정이 없어 침해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엇갈린다. 파이낸셜뉴스는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최근 법원 판단을 분석하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봤다.


['퍼블리시티권' 침해 논란] '퍼블리시티권' 명확한 규정 없어 20년째 엇갈린 판결


국내 판결에서 퍼블리시티권이 처음으로 등장한건 1990년대 중후반 무렵이다. 이후 20년 동안 연예인, 스포츠 선수 등이 퍼블리시티권의 침해 여부를 따져보기 위해 법원을 찾았으나 여전히 시기별, 재판부별로 판단이 제각각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낸 1심 재판부의 15개 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인정한 판결은 단 3건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거나 별도로 판단하지 않고 인격권만으로 연예인의 이름과 사진 등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 하급심 판례는 성문법과 관습법에 의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최초로 인정한 이휘소·제임스딘 사건

국내에서 최초로 법원이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판단을 내린 것은 '이휘소 사건', 연예인에 대해서는 '제임스딘' 사건이다. 재미 한국계 물리학자인 고(故) 이휘소 박사의 유족들은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이 박사의 이름과 초상 등이 무단으로 사용돼 퍼블리시티권이 침해됐다며 저자를 상대로 출판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1994년 9월 제기했다. 이듬해 6월 법원은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재산적 가치가 있는 유명인의 성명·초상 등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사항을 상업적으로 인정한 권리"라고 최초로 개념을 제시했다.

같은 해 1994년 10월 미국 유명 배우 제임스딘의 고종사촌이 개그맨 주병진씨와 그가 운영하는 의류 업체를 상대로 "'제임스딘'에 관한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며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은 미국 22개주의 주법과 앞선 이휘소 판결 등을 근거로 초상권과는 다른 재산적 권리의 특성을 지닌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했다. 다만 양도성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인격과 완전히 독립된 권리로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양도가 불가능하다는 면에서 사실상 인격권과 동일하게 본 한계가 있었다. 이후 관련 사건의 특허법원은 퍼블리시티권이 상속가능하다는 점을 전제로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후 2010년대 초반까지 재산권 성격의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라 선고된다. 개그맨 정준하씨가 MBC '노브레인 서바이벌' 출연시절 자신의 캐릭터를 무단으로 사용해 판매한 콘텐츠 제공업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2005년 1심은 "대중적 지명도가 있어 재산적 가치가 있는 원고의 초상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인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당시 법원은 퍼블리시티권을 "인격권으로서의 성격을 가진 전통적 의미의 초상권과 구별된다"며 재산권이 인정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여전히 엇갈리는 하급심 판결

그러나 최근에는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짙어진다. 2013년 이후 다수의 연예인들이 낸 소송에서도 법원은 퍼블리시티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인격권 침해만을 인정해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성문법을 중시하는 국내 판결과 달리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고, 인격권만으로도 이름·사진 등에 대한 침해를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슈퍼주니어·소녀시대·원더걸스·샤이니·동방신기·배용준·김남길 등 연예인 59명이 허락 없이 그들의 이름을 키워드 검색광고 서비스에 사용한 포털사이트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독립적 재산권으로서의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1심에 이어 2심도 지난 2015년 1월 패소판결했다.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했던 기존 법원의 판단과는 달리 헌법을 토대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판결도 있다.
은퇴 야수선수 모임인 일구회가 인터넷 야구게임 '슬러거' 개발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는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인격 그 자체'가 아니라 '인격의 발현으로 인해 생성된 경제적 이익'이라는 개념으로 2016년 4월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별개의 재산권이므로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권리행사를 위임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어 "명시적으로 규정한 실정법이 없어도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한 내용을 이루는 성명권에는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성명이 함부로 영리에 사용되지 않을 권리가 포함된다"며 헌법상 재산권이 인정된다고 봤다.

fnljs@fnnews.com 이진석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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