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까지 보상?”…원주민 지원 조례 추진에 이념 논쟁 확산
주민들 “국가에 희생된 주민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왜곡말라”
(인천=뉴스1) 박아론 기자 = "70년간 고향 땅을 밟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한인덕 월미도귀향대책위원회 위원장(74)은 27일 오전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위원장은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피해를 입은 원주민이다. 그는 최근 피해 원주민들을 위한 지원 조례가 이념 논쟁으로까지 확산되면서 논란이 빚어지자 원주민 10여 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70년 전, 폭격이 떨어진 그날의 악몽이 여전히 눈 앞에 생생하다"며 "다행히 고향을 탈출해 목숨을 건진 주민들은 다시 고향 땅을 밟고 싶었지만, 각종 개발 계획 추진으로 바로 500m 앞에 떨어진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간 몇차례 무산 끝에 조금이나마 원주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지원조례가 마련이 됐는데, 정치권에서는 때 아닌 이념 논쟁이 빚어지며 주민들의 아픔을 이용하려 들고 있다"며 "심지어 우리를 빨갱이로까지 몰고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조례는 국가에 의해 희생된 주민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이라며 "더 이상 그 의미를 왜곡하지 말고 70년간 사무친 주민의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월미도 원주민들은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미 제7함대 세력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 함정 261척이 인천 앞바다에서 월미도로 일제히 함포사격을 가하고, 하늘에선 전투기로 포탄과 총알을 쏟아내면서 피해를 입게 됐다.
당시 주민 100여 명은 목숨을 잃었고, 간신히 살아남은 주민도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후 월미도 원주민과 가족들은 한국전쟁(1950~1953년)이 끝난지 66년이 지난 현재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 직후부터 1971년까지는 미군부대가 주둔했기 때문이었고, 박정희 정권 때는 각종 개발계획으로 귀향길이 막혔다.
2001년 국방부로부터 월미도 일대를 매입한 인천시가 이곳을 공원으로 개발해 원주민들의 '꿈'은 또한번 좌절됐다. 이는 한국전쟁 후 남한에 집을 두고도 각종 이유로 귀가하지 못한 유일한 사례다.
2008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월미도 원주민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수차례 지원조례 추진이 무산돼오다 안병배 의원 등 10명의 인천시의원들이 월미도 피해 주민을 위한 '과거사 피해주민의 생활안전 지원조례안'을 발의하면서 11년만에 지원 근거가 마련됐다.
조례는 인천상륙작전으로 피해를 당한 ‘월미도 원주민’ 또는 상속인에게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지원금의 규모, 지급기간, 수령범위 등은 위원회를 설치해 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잇따라 성명을 내며 '인천상륙작전의 피해 배상은 북한 정권에 청구하는 게 옳다'는 등의 논리로 지원 조례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이념 논쟁으로까지 번지며 논란이 빚어졌다.
월미도귀향대책위원회와 인천시민단체는 "임진왜란까지 보상할꺼냐는 억지 논리로까지 번지며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며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해 희생된 주민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보상할 수 있는 조례인 만큼, 흔들림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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