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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화폐단위변경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27 17:05

수정 2019.03.27 17:05

리디노미네이션
한국은행이 2003년 1월 노무현정부 인수위원회에 '화폐제도 선진화 방안'을 보고했다. 핵심은 1000대 1, 즉 10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하자는 내용이었다. 당시 한은은 박승 총재가 이끌었다. 이듬해 김효석 의원(민주당)은 이 방안을 담은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다.
경제사령탑인 기획재정부가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찬반의 논리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은은 화폐개혁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거래 편의성, 경기부양 효과, 후진국 이미지 개선 등을 꼽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부(국민순자산)는 1경3817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경제규모는 커졌는데 액면단위가 지나치게 작아 표기나 거래에 불편이 따른다는 지적이었다. 선진국 가운데 미국달러화나 유로화 환율이 네자릿수인 나라는 없다.

기재부가 이 방안에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이었다. 화폐 액면을 고치면 900원짜리 물건이 0.9환이 돼야 맞지만 1환으로 오를 위험이 크다고 봤다. 당시에는 물가오름 폭이 지금보다 훨씬 컸다. 막대한 비용부담도 문제였다. 당장 금융시장의 혼란을 피할 수 없다는 점도 경제를 책임진 기재부의 발목을 잡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화폐개혁을 경제학 용어로는 '화폐단위변경'(리디노미네이션)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정부수립 후 두 번의 화폐단위 변경이 있었다. 한 번은 6·25전쟁 중이던 1953년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1원을 100환으로 바꿨다. 또 한 번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인 1962년 숨은 돈(퇴장자금)을 양성화해 경제개발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10환을 1원으로 바꿨다.
그러나 기대했던 양성화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화폐단위 변경 문제가 다시 국회에서 불거졌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25일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이원욱 의원(민주당)의 관련 질문에 "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은 한다"고 답했다. 신중히 접근해야 하겠지만 일단 공론화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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