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독 마약에 관련된 이슈들이 많았습니다. 마약반 형사들이 '치킨'을 만들어 판다는 내용의 영화 '극한직업'이 관객 수 1600만명을 넘기며 대흥행을 했습니다. 클럽 '버닝썬' 폭행 사건이 대두된 후 클럽 내부에서 마약 투약이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보도들을 접하다 보니 무의식중에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던 걸까요. 얼마 전 골목을 지나던 중 '마약통닭'이라는 간판을 보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마약은 엄연한 불법행위인데, 마약이라는 단어를 상표에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 공서양속 해치는 단어 상표로 불가.. 그렇다면 마약은?
마약(痲藥), '저릴 마'에 '약 약'자를 사용합니다. 마취 작용을 하며 습관성이 있어 장기 복용하면 중독 증상을 나타내는 물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의미를 차용해 중독성이 강한 맛을 표현하거나 쓰면 쓸수록 계속 쓰고 싶어지는 물건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주로 사용됩니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다섯 가지가 훌쩍 넘습니다. 마약치킨, 마약김밥, 마약빵, 마약베개, 마약방석 등.. 일단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봤습니다. 마약떡볶이, 마약삼겹살 등 관련 음식점 상호 수십개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허정보검색서비스에서 확인해보니 마약의자 등의 상표가 출원돼 심사를 통과한 상태였습니다.
상표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상표법 제 34조 4항에는 '상표 그 자체 또는 상표가 상품에 사용되는 경우 수요자에게 주는 의미와 내용 등이 일반인의 통상적인 도덕관념인 선량한 풍속에 어긋나는 등 공공의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상표'는 등록을 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상표에 사용된 '마약'이라는 단어는 통상적인 도덕관념에서 어긋나거나 공공의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단어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뜻일까요?
■ "진짜 마약 썼다는 의미 아닌 중독성 강한 맛이라는 뜻"
현직 변리사에게 관련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피앤케이국제특허법률사무소 임종승 변리사는 "상표 출원 시 상품과의 관련성에서 공서양속에 어긋나는지를 판단하게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상표 심사는 해당 상품을 직접 이용하는 수요자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마약김밥'의 경우 수요자들이 음식에 마약이 들어갔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약만큼 중독성이 강하고 맛있는 김밥이다'라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겁니다.
특허청 상표심사기준에 기재된 누드교과서의 사례가 이와 비슷합니다. 지난 2003년 출간된 이 참고서는 '누드교과서'라는 이름이 사회 일반인의 건전한 성적 감정을 해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려워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임 변리사는 "이 경우 참고서를 사용하는 수요자인 학생들이 '누드'라는 단어를 선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코카인'이라는 상표를 출원했다 등록이 거절된 사례에 대해 질문하니 "해당 마약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가 수요자에게 직접 전달이 되기 때문에 거절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답했습니다.
■ '마약○○', '마약△△△' 상표, 이제는 등록 못한다?
특허청 상표심사정책과는 "지난해 9월 이에 관한 새로운 지침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라고 밝혔습니다. 특허청은 상표의 구성이 '마약, 아편' 또는 '마약, 아편' 결합표장으로 출원된 상표는 지정상품과 관계없이 거절하도록 했습니다. 일반인의 도덕관념에 반하고 공익적 측면에 바람직하지 않아 공서양속 위반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다만 상표와 상호는 다른 개념입니다. 상호는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을 할 때 부여되는 것입니다. 해당 상호를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싶다면 상표등록 과정을 거쳐 독점적 권리를 취득해야 합니다. 그래야 간판 등에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하네요. 예를 들면 '마약족발'이라는 상호는 누구나 등록할 수 있지만, 이를 독점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상표등록이 필요할 때는 특허청으로부터 거절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약 #상표 #극한직업 #마약통닭
sunset@fnnews.com 이혜진 인턴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