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관리부실·장비결함 결론 땐 손배 불가피
(세종=뉴스1) 한종수 기자 = 강원도 고성 산불이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관리하는 전봇대에서 발화한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나면서 책임 공방도 불붙을 전망이다.
재산 피해가 적지 않은 만큼 한전 측이 설비 관리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장비 자체에 결함은 없었는지 따져봐야 할 사안이 많아 현 상황에서 단정 짓기엔 이르지만 배상 책임이 큰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7일 한전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사흘 전 발생한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은 고성 원암리 지역 한 주유소 인근 전봇대에서 시작된 불이 인근 야산으로 옮겨 붙으면서 시작됐다.
한전 측은 전봇대에 설치된 일종의 차단기 역할을 하는 개폐기의 연결전선에 강풍에 날린 나뭇가지 등 이물질이 닿으면서 강한 불꽃이 생겼고 이로 인해 화재가 난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소방당국이 정확한 발화 원인을 조사 중인데 최종 결론이 전봇대 개폐기 문제로 드러난다면 한전을 상대로 한 막대한 손해배상 소송이 벌어질 수 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개폐기 설비 관리 소홀이나 안전장치 미설치 등 규정을 위반한 사실 등이 드러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물 수 있다"며 "다만 정확한 원인이 규명된 후 소송 등의 문제제기가 가능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만약 한전이 관리하는 시설에서 발화한 산불로 최종 결론이 나오고 한전 책임이 일정 부분 인정된다면 이 설비(개폐기)를 납품한 업체의 책임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문제의 개폐기는 불량납품 논란이 있었던 국내 L기업이 납품한 것이다. 당초 발화 원인으로 한전의 '변압기'가 지목됐을 때 한전이 "화재가 난 전봇대에 있는 것은 변압기가 아니라 개폐기"라고 분명히 한 점도 혹시 모를 책임론에서 '선 긋기'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86명의 사망자를 낸 산불도 송전선이 발화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이를 관리하는 미국의 한 전력회사가 약 11조원의 배상금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여 파산 보호 신청을 한 바 있다.
물론 한전이나 납품업체가 미국 사례처럼 막대한 손배 책임을 짊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설비 결함이나 관리 소홀보다는 천재지변 등 외부 요인에 의한 불가항력인 경우 한전 측에 모든 책임을 묻기가 어려워진다.
이를 의식한 듯 한전은 화재발생 다음 날인 5일 입장문을 통해 "전봇대 개폐기에 연결된 전선에 이물질이 강풍에 의해 접촉돼 아크(전기불꽃)가 발생하면서 난 화재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전은 "개폐기는 내부에 공기가 없는 진공절연개폐기로 기술적으로 폭발할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산불이 전봇대에서 시작한 것은 인정했지만 개폐기 자체 결함은 없다는 뜻이다. 행여나 한전의 관리 부실, 설비 문제 등으로 비판이 확산될 수 있다는 판단에 발빠르게 논란의 불씨를 사전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의 한 로펌 변호사는 "만약 한전 등 책임기관 귀책으로 결론이 나면 손배 소송 가능성이 크지만 관리 부실이나 장비 결함 등이 규명되지 않으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얼마 전 서울 아현동 KT 화재, 경기 고양시 열수송관 파열 사고에 이어 최근 지열발전으로 촉발된 포항 지진에 따른 수조원대 소송전이 예견되면서 한전 측도 대규모 소송에 휘말리지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7일 오전 6시를 기준으로 산불 피해는 임야 약 530ha와 주택 401채, 창고 77채, 비닐하우스 9동, 축사시설 925개소 등이다. 인명 피해는 사망자 1명, 부상자 1명으로 나타났다.
현재 고성군과 속초시 이재민은 각각 626명과 113명으로 집계됐으며 이들은 마을회관, 초등학교, 공공기관 연수시설 등에서 생활하고 있다. 산불 피해를 입은 고성, 속초, 동해, 강릉, 인제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