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해체시장은 전체 원전산업에서 아직 블루오션 영역이다. 기계·로봇·화학 등 다양한 기술이 총망라되는 융복합기술로 일구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서다. 더욱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그 세계시장 규모가 2030년 5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현재 기술력을 갖춘 나라는 미국, 프랑스, 일본 정도다. 박근혜정부 때인 2015년부터 관심을 기울인 우리가 해체기술 확보에 관한 한 한발 늦은 감도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문재인정부가 해체시장 진출을 너무 서두르는 인상을 주고 있어 문제다. 해체연구소 입지 선정이 애초 유치를 신청한 동남권 지역에 모두 걸치는 '나눠 먹기' 형태로 귀결된 게 그 징후다. 같은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 운영에 여러 지자체가 얽히면서 향후 중복투자나 운영상 갈등이 불을 보듯 뻔하지 않나. 그런데도 내년 총선에 앞서 인기영합적 결론을 내리면서 제대로 된 비용·편익 분석을 건너뛴 셈이다. 특히 현재 미국의 60% 수준이라는 기술력으로 섣불리 나서다 폐로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한국의 원자력 개발 60년사의 오점을 남기게 된다.
원전 해체시장 진출을 탈원전의 빌미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계산을 깔고 있다면 더욱 심각한 사태다. 해체시장은 전력공급이나 일자리 창출 등 국민·지역경제에 비치는 파급효과 측면에서 원전산업에 비해 조족지혈이다. 거칠게 비유하면 거대한 원전시장은 접고 작은 해체시장을 찾아가겠다는 것은 보건·의료산업은 없애고 장례식장 운영에만 매달리겠다는 꼴이다. 원전 해체기술 육성은 당연히 추진해야 할 과제이지만, 여기에 '올인'해 이미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원전산업 자체를 포기해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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