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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관세 부메랑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23 17:02

수정 2019.04.23 17:07

세계 대공황 초기인 1930년 5월 3일 경제학자 1028명이 연서명으로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보호무역주의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후버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악명 높은 스무트·홀리법을 제정, 25.9%인 수입품 평균 관세율을 59.1%로 높였다. 뉴욕증시 대폭락으로 야기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관세장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결과는 대재앙이었다.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 교역 상대국들은 즉각 고율의 보복관세로 맞섰다. 관세전쟁은 세계경제를 대공황의 긴 터널 속으로 몰아넣었다. 세계무역은 5년 동안 66%나 격감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도 3년간 15%나 줄었다.

그로부터 88년 뒤인 2018년 5월 3일 미국 경제학자 1040명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또 편지를 썼다. 이번에도 내용은 보호무역 정책을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로저 마이어슨(2007년), 앨빈 로스(2012년), 로버트 실러(2013년), 올리버 하트(2016년), 리처드 세일러(2017년)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15명도 함께했다. 이들은 "관세 인상이 상품가격 상승을 유발해 최종적으로 다수의 미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은 관세전쟁을 강행했다. 대미무역에서 흑자를 올리고 있는 한국과 중국이 타깃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한국이 덤핑으로 한때 좋은 일자리를 제공했던 우리 산업을 파괴했다"고 주장하며 한국산 세탁기에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했다. 쿼터 초과물량에 최고 50%의 관세폭탄을 투하했다.

시카고대와 연방준비제도(Fed) 연구팀이 지난 1년간 세탁기 관세가 미국 산업과 소비자에게 미친 영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관세수입이 8200만달러(934억8000만원) 늘어난 반면 소비자들은 15억달러(1조7100억원)를 추가로 지불했다. 세탁기와 건조기 가격이 평균 11.5% 올랐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의 경고가 고스란히 현실이 됐다. 트럼프발 세탁기 관세는 결국 미국 소비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관세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부를 뿐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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