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노인情] "졸혼 어떠세요?" 종로3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윤홍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27 09:59

수정 2019.04.27 09:59

결혼 30년 차 이상 부부 이혼 17.3% 증가
"졸혼은 무슨…별거랑 다를 바 없는 말장난"
"혼자 살면 편하고 괜찮지"
[편집자 주] '노인情'은 지금을 살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 한 골목.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잡고 걷고 있다.
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 한 골목.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잡고 걷고 있다.

노인들은 '졸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통계청이 내놓은 '2018년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은 10만8700건. 이혼 부부 3쌍 중 1쌍은 결혼 20년 차 이상 부부였다.

결혼 20년 차 이상 부부의 이혼은 9.7%(3만6300건) 늘었고, 30년 차 이상 부부의 이혼도 17.3%(1만3600건) 증가했다. 특히 20년 차 이상 부부의 이혼 비중은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인구 구조가 고령화되고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황혼이혼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유교주의적 사고에 따라 이혼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엔 노년층의 가치관이 변하면서 이혼을 선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황혼이혼이 증가하면서 대안 아닌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졸혼이다. 최근 배우 백일섭과 이외수 작가 등이 졸혼했다고 밝히면서 이에 대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졸혼은 말 그대로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으로, 법적으로는 부부 관계를 유지하지만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말한다.

30년, 40년간 함께 살았으니 이제 남편이나 아내의 간섭없이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

지난 24일, 노인들의 1번지 종로3가를 방문해 노년의 결혼생활과 황혼이혼, 졸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답한 노인 중 절반 이상이 졸혼에 대해 알고 있었고, 남성에 비해 여성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

■ 노년의 결혼생활, 어떤가요?


종로3가에서 포장마차를 하고 있는 A할머니는 결혼한지 40년이 넘었다. 슬하엔 4명의 자녀가 있고 모두 결혼해 독립했다. 공무원을 하다가 은퇴한 남편과 둘이 살고 있다는 A할머니는 특별히 사이가 좋은 건 아니지만 남편이 안쓰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A할머니는 "남편이 은퇴해서 포장마차를 하게됐다. 남편은 집에서 쉬고 대화도 많이 하진 않지만 평생 열심히 일한 것을 알고 있다"며 "나름 아이들한테 자상했는데 그만큼 대우 받지 못해서 짠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요새 남자들이야 다르겠지만 옛날 남자들은 다 무뚝뚝하고 표현할 줄 몰랐다. 시대가 그랬던 거 아니겠나"라며 "화가 나고 싸울 때도 많지만 그냥 살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일 같이 탑골공원에 오고 무료급식을 먹는 B할아버지는 독거노인이 아니다. 아내와 함께 살고 있지만 집에만 있기 답답해 마실삼아 종로3가에 오고 있다.

B할아버지는 "한 평생 같이 살았는데 아내와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겠나. 그냥 얼굴보고 밥먹고 자고 대면대면하는거지"라면서도 "죽을 때까지 정으로 살고 의지하고 그러지 않겠나"라고 웃었다.

같이 탑골공원에 오지 않느냐는 질문엔 "아내는 동네 할머니들이랑 노는 걸 좋아하고 탑골공원 싫어한다"며 "애들도 다 커서 독립했는데 각자 좋아하는 거 하면서 잘 살면 되는 거 같다"고 답했다.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할아버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할아버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 졸혼 반대! 용기 없어 졸혼이라 하는 거 아닌가


졸혼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보단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노인들이 많았다. 졸혼에 반대하는 의견의 대부분은 '평생 살았으니 그냥 사는 게 낫다'거나 '이혼이면 이혼이지 무슨 졸혼이냐'는 등이었다.

종로3가 거리에서 만난 C할아버지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려 하지 말라. 이혼하기 창피하고 용기가 없어서 졸혼이라고 하는 것"이라며 "졸혼도 돈 있는 사람이나 하는 거지 우리처럼 없는 사람은 애초에 따로 살 형편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십여년 전에 이혼하고 혼자 산다고 밝힌 D할아버지는 "어차피 따로 살거면 깨끗하게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낫다"면서 "계속 살자니 죽을 거 같고 이혼하자니 골치 아파서 별거를 졸혼이라고 말장난하는 거 아닌가. TV에서나 졸혼하는 사람 있지 실제로 어디 있나"라고 되물었다.

또 포장마차에 앉아 낮술을 하던 E할아버지는 "평생 함께 살았는데 미우나 고우나 함께 사는 거지 앞으로 얼마나 더 산다고 따로 살겠나"라며 "졸혼은 사회가 타락하고 있다는 증거"고 강조했다.

서울시 종로3가 한 골목에 있는 다방에서 할아버지가 나오고 있다.
서울시 종로3가 한 골목에 있는 다방에서 할아버지가 나오고 있다.

■ 졸혼 찬성! 따로 살면 밥 안 해줘도 되고 좋지


졸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노인들은 '자유롭게 살 수 있다'거나 '잠깐 따로 살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졸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지 졸혼을 하고 싶다고 말한 노인은 없었다.

탑골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F할머니는 "부모가 이혼하면 자식이 결혼할 때 흠이 될 수 있는데 졸혼은 괜찮지 않느냐"며 "잠깐 따로 살다가 아니다 싶으면 같이 살아도 되고 머리 아프게 법원도 안 가도 되고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졸혼에 대해 알지 못했다던 G할머니는 졸혼에 대해 설명을 듣자 "남편 밥 안 차려주고 아무데나 벗어놓은 양말 안 치워도 되는거냐. 그렇다면 졸혼 나쁘지 않겠다"며 "한 평생을 같이 살며 애 키우고 집안 일 했는데 이제는 혼자 살아도 될 거 같다"고 털어놨다.

한편 H할아버지는 "100세 시대에 70년을 같이 사는 건 힘든 일"이라며 "너무 붙어있으면 답답하고 싸울 일이 많다.
독립적으로 자기 좋은 일 하면서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오히려 얼굴 붉힐 일이 없을 수 있다"고 전했다.

#노인 #결혼 #황혼이혼 #졸혼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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