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유통

통인시장 대표메뉴 엽전도시락…"한복 입으면 더 많이 줘야지" [김관웅 선임기자가 가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12 16:24

수정 2019.05.12 16:24

한국의 진짜 '속살' 전통시장을 찾아서
경복궁~청와대 잇는 명소..한복 빌려입은 커플·외국인들 엽전 들고 시장서 전통음식 체험
작년에만 20만명 넘게 다녀가
시장연합회 "부족한 점 개선"..앉아서 음식 먹을만한 공간 부족
외국인 늘어나는데 서비스 미흡 "영어 능통한 해설사 상주해야"
통인시장 대표메뉴 엽전도시락…"한복 입으면 더 많이 줘야지" [김관웅 선임기자가 가다]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은 어느 나라를 가든지 그 도시의 전통시장을 제일 먼저 찾아간다. 전통시장에는 그 도시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걸어 온 삶의 기록과 풍경이 고스란히 묻어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시장도 마찬가지다. 전통시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그 지방 특유의 음식을 맛보고 때론 그 음식에 담긴 가슴 찡한 사연에 배고팠던 우리의 옛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지금은 잘 정돈된 대형 유통시설에 밀려 활력을 잃었지만 그 애잔한 옛날 정서는 아직도 그대로 살아있다. 어찌 보면 우리가 걸어온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진짜 속살'일지도 모른다. 이런 전통시장이 수년 전부터 새롭게 변하고 있다. 과거의 감성을 '약점'이 아닌 '장점'으로 바꿔 젊은이들의 발길을 불러들이고 있다. 실제 각 지역의 곳곳에 위치한 전통시장은 그 지역만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젊은 감성을 불러들이는 독특한 마케팅으로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에 따라 파이낸셜뉴스는 한국의 전통시장의 달라지는 모습을 전달하고 우리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우리의 전통시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 등을 자세히 소개하는 '한국의 진짜 속살, 전통시장을 찾아서' 시리즈를 진행한다.

통인시장 입구. 사진=김관웅 기자
통인시장 입구. 사진=김관웅 기자


"우와! 기름떡볶이다. 이게 여기서 제일 유명한 거래. 진짜 먹고 싶었는데. 하하하. 마약김밥도 있네. 우리 오늘 이거 다 먹고 가자."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통인시장을 들어서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잔뜩 신이 났다. 마치 이곳 지리에 익숙한듯 시장 중앙에 위치한 고객센터로 찾아간 학생들은 줄을 서서 저마다 검정 도시락 그릇과 함께 한 꾸러미의 엽전을 들고 돌아선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통인시장의 명물 기름떡볶이집이다.

"할머니, 기름떡볶이 주세요. 여기 2냥." 도시락을 내미는 학생들 얼굴에는 이미 침이 잔뜩 고였다.


"그런데 이거 먹어보고 시키는겨? 조금만 기다려, 맛있게 해줄 테니." 상인 할머니가 손녀딸과 대화하듯 웃으며 답한다. "우리 아빠가 어릴 때 제일 좋아하던 간식이라고 꼭 먹고 오랬어요." 마냥 신이 난 이 학생들은 금요일 오후를 이용해 우리의 전통시장을 경험하는 체험학습 중이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에서 왔다는 이들 학생들은 "바로 옆쪽 서촌에서 놀다가 통인시장에 들렀다"며 "다음 체험학습 때는 한복을 입고 도시락카페를 즐기고 싶다"고 했다.

■엽전으로 음식 사먹는 뷔페시스템

서울 서대문구의 통인시장은 전통시장에서 꽤나 유명한 곳이다. 서울 도심 관광지를 대표하는 경복궁, 청와대, 서촌 등과 인접한 탓도 있지만 과거 조선시대처럼 엽전을 이용해 시장 곳곳을 돌며 음식을 사먹는 이색체험을 할 수 있는 '도시락카페'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락카페는 방문객들이 고객센터에서 5000원으로 엽전 10개와 식판 같은 도시락을 구입해 시장 곳곳을 둘러보며 엽전을 이용해 음식을 사먹는 방식이다. 웬만한 음식은 엽전 한닢, 재료가 비싼 경우여도 두닢이면 적당한 양을 맛볼 수 있다. 엽전 열닢 정도면 4~5가지 음식을 도시락에 담을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 담은 후 고객센터 2층과 3층에 위치한 도시락카페에서 식사를 즐기면 된다. 카페 내에서는 국과 밥도 판다. 각각 1000원이다.

지난 2012년 1월 시장 상인들이 주도해 시작한 '내맘대로 도시락 카페 통'은 통인시장을 찾는 방문객이 시장을 둘러보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을 먹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도입한 시스템이다.

방문객들이 전통적 음식과 분식을 비롯해 다양한 먹거리를 접해보고 싶지만 개별 음식을 시키면 양이 너무 많고 금전적 부담도 크기 때문에 뷔페 음식점의 장점을 접목한 것이다. 특히 외국인은 처음 보는 음식이 많아 이것저것 맛을 보고 싶지만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통인시장을 둘러보는 외국인들은 손에 도시락과 엽전을 들고 능숙하게 전통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만에서 왔다는 한 가족은 "한국관광공사 웹사이트를 통해 통인시장에 대해 알고 있었고 한국에 오면 꼭 와보고 싶었다"며 "전통음식을 여러 개 다 맛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통인시장을 찾은 국내 관광객들이 엽전을 이용해 떡볶이를 사고 있다. 엽전 도시락은 통인시장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았다. 사진=김관웅 기자
통인시장을 찾은 국내 관광객들이 엽전을 이용해 떡볶이를 사고 있다. 엽전 도시락은 통인시장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았다. 사진=김관웅 기자

■"한복입고 오는 손님은 이뻐서 음식을 더 많이 주지"

통인시장은 외국인과 국내 지방 관광객들에게 꼭 들러야 하는 명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주변에 경복궁, 서촌, 청와대는 물론 근대 인물들의 생가가 많다. 국내 관광객에게는 좋은 역사체험 장소가 되고 외국인에게는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필수 코스로 유명하다.

경복궁을 들러 청와대 쪽으로 올라갔다가 서촌 쪽으로 내려와 통인시장까지 가는 코스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또 안국역 인근에서 한복을 빌려 차려입고 아예 조선시대 느낌을 제대로 즐기는 우리나라 젊은 방문객들과 외국인도 많다.

통인시장의 한 상인은 "한복을 입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너무 이쁘고 고마워서 같은 돈을 내더라도 음식을 더 주게 된다"며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전통을 다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통인시장의 장점은 엽전을 이용한 도시락카페만이 아니다. 정육점은 물론 과일가게, 부침개집, 반찬가게까지 지역민들이 반드시 필요한 상점도 같이 입점해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들의 경우 오히려 이런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왔다는 젊은 커플은 "한국사람들이 매일 먹는 반찬가게가 아주 재밌다"고 좋아했다.

■시설·마케팅 손보면 더 유명해질듯

통인시장은 서울 도심에서 외국인 관광객과 국내 지방 관광객들을 맞는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다소 아쉬운 점도 있다. 방문객들이 음식을 담은 도시락을 가져와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다소 협소하고 시설도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단체방문객의 경우 지하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시설이 좋지 않은 편이다. 도시락카페를 즐기고 내려오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밖을 내다보면서 먹을 수 있으면 더 좋을 텐데 내부가 너무 특징이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통인시장연합회를 운영하는 통인커뮤니티 심계순 관리부장은 "구청이 소유한 건물을 그대로 리모델링해서 사용하다 보니 개보수하거나 제대로 시설을 설치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며 "관광지가 많이 몰려있어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데 한편으로는 좀 민망할 때가 있어 국비나 시비로 지원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가 웹사이트를 통해 외국 관광객들에게 국내의 유명한 전통시장 소개를 하면 통인시장에 접속해 정보를 내려받는 경우가 다른 곳의 몇 십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게 기대를 많이 하고 오는 외국인을 맞기에는 분명히 시설이나 마케팅 기법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심 부장은 또 "서울시가 골목길 해설사를 운용하고 있는데 통인시장에도 해설사를 상주시키면 전통시장을 좀 더 제대로 알리고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데 이게 안돼서 아쉽다"고 말했다. 통인시장 내 젊은 상인들은 영어를 약간 할 수 있지만 상당수 상인은 외국 방문객이 방문해도 해당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어떤 유래가 있는지 등을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 전통시장이라면 음식을 조리하는 냄새와 연기 등의 연출도 필요한데 너무 조용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다. 특히 따뜻한 음식의 경우 즉석에서 요리해 줘야 하지만 일부 상점은 그냥 쌓아놓고 파는 경우도 있다. 심 부장은 "자체적으로 교육도 하고 명동 등 선진시장 견학도 하고 있는데 아직 인식이 많이 바뀌지 않고 있다"며 "지자체와 상인 모두가 조금만 달라지면 큰 변화가 올 수 있는데 그게 잘 안돼 아쉽기는 하지만 앞으로 분명히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통인시장 공식홈페이지 제공
통인시장 공식홈페이지 제공

통인시장은 일제강점기 생긴 공설시장이 모태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통인시장은 일제강점기이던 1941년 효자동 인근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을 위해 조성된 공설시장을 모태로 하고 있다. 1950년 6·25 전란 이후 서촌 지역에 인구가 급증하면서 약 200m 길이의 현재 시장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각종 농수축산물과 더불어 다양한 식료품을 판매하면서 지역민의 생활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2010년 서울형 문화시장으로 선정됐으며 2011년부터는 마을기업을 설립해 배송 및 통합콜센터, 온라인쇼핑몰까지 운영하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내맘대로 도시락카페 통'을 운영하면서 평일 기준 400~500명, 주말 1000명 정도가 방문하는 명소가 되고 있다.
연간 방문객은 2016년 24만3000명을 기록해 정점을 찍은 후 경기침체로 인해 국내 방문객이 줄면서 2017년 22만9000명, 2018년 20만2000명을 기록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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