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오기 전, 그러니까 지난해 말 서울에서의 일이다.
광화문에서 택시를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연신 급브레이크다.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해 결국 중간에 내렸다. 택시기사가 잔돈을 건네줄 때야 알았다. 80대로 보이는 그가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운전했다는 사실을. 인구 5명 중 1명이 70대 이상인, 일본에서도 체감상 택시기사 절반은 70대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향후 일본 사회에선 사무직·생산직에서도 '일하는 70세'를 쉽게 맞닥뜨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본의 대형은행인 리소나은행은 올해 10월부터 70세까지 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교토은행, 후쿠시나현의 도호은행, 아키카현의 호쿠도은행 등 지방은행의 경우 70세 정년을 이미 실시하고 있지만 대형은행에서 70세 고용을 발표한 건 이 은행이 처음이다. 이 은행은 지금까지 정년(60세) 후 재취업을 원하면 65세까지 재고용하는 제도를 운영해왔는데, 앞으로는 70세로 올릴 계획이다.
대형 금융업계에선 정년연장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 은행 60세 이상 직원들에게 자체 조사를 해봤더니 40% 이상이 "65세 이후에도 계속 일하겠다"는 반응을 내보였다고 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6일 현재 65세인 정년을 70세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직접 발표했다. 그는 "건강하고 의욕이 있는 고령자의 경험과 지혜를 사회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마련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지난해 10월 선언한 '평생현역사회'(生涯現役社會·생애현역사회) 추진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총리표 정책인 이름하여 '고령자고용안정법'이 내년 국회에서 통과되면 일본 기업은 종업원의 정년을 70세까지로 연장하거나 다른 업체로 재취업, 창업지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노력 의무' 부과이나 70세 정년이 '강제'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게 일본 언론들의 분석이다.
전례가 있다. 앞서 일본 정부는 '60세 이상의 정년을 위한 노력 의무'라는 컨센서스 통합작업을 벌인 뒤 실제 65세 정년을 법제화한 바 있다. 일본 정부가 70세 정년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노인복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특히 해마다 지급액이 늘어나는 공적연금은 골칫거리다. 인구 5명 중 1명이 70대 이상 인구다. 여기에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계속 줄고 있다. 지난해 생산가능인구는 전년(2017년) 대비 51만명 줄어든 7545만명이었다. 1950년 이후 최저치다. 이대로 두면 이 수치는 30년 후 5300만명까지 감소한다. 아이는 줄고, 노인이 늘어나는 이른바 '소시고레이카(少子高齡化)' 현상이 한층 가속화되고 있는 것. 이에 65~70세 인구를 노동인구로 편입시켜보자는 정책당국의 단순한 해법인 셈이다. 70세 정년 연장은 쉽게 말해 노인이 직접 벌어먹도록 해서 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최대한 뒤로 미뤄보자는 것이다.
노인들이라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평생현역사회엔 대가가 따른다. 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후생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70세로 미루자는 논의가 이어져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70세 현역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돼 가는 한국을 향한 일종의 '리트머스시험지'다. 이미 정년연장에 진통을 겪은 한국도 2차 정년연장을 앞두고 있는 것. 독일·프랑스·스페인 등은 65세에서 67세로, 최근 한국 대법원도 최근 육체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최종 나이를 기존 60세에서 65세로 높였다. 그런 점에서 아베 내각의 70세 정년은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정의를 수정하는 첫 시험대인 셈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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