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4가지 근거로 혐의 모두 유죄 인정..징역 3년 6월 선고
"금고에서 시험지 꺼내 딸들에게 유출..문제 풀이도 없이 만점"
"금고에서 시험지 꺼내 딸들에게 유출..문제 풀이도 없이 만점"
숙명여고 재직 중 쌍둥이 딸들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교무부장이 1심에서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이기홍 판사는 23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A씨(52)에 대해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시험지에 대한 결재권한을 가진 점 △A씨의 의심스러운 행적 △쌍둥이 딸들의 의심스러운 성적 향상 △쌍둥이 딸들의 의심스러운 행적 등을 근거로 들어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숙명여고 학사관리지침에 따르면 교과담당 교사를 거쳐 교무부장이 결재를 하게 되는데, 결재를 올린 교사가 수업에 들어가게 되면 피고인이 50분 동안 시험지를 갖고 있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각 증언에 의하면 피고인은 교무부장 직무를 인수인계하면서 시험지가 보관된 2층 교무실 금고의 비밀 번호를 알고 있었다”며 “교무실 배치도에 의하면 피고인의 자리 뒤쪽에 금고가 있어 몇 발자국만 움직여도 금고를 열어 시험지를 확인해볼 상황이 됐다”고 덧붙였다. 교무실에 사람만 없다면 충분히 시험지를 확인해볼 수 있었을 것이란 취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무렵 밤까지 교무실에 남아있었음에도 초과근무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며 “초과근무를 틈타 금고를 열어 시험지 답안을 확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두 딸들의 의심스러운 성적 상승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쌍둥이 자매는 1학년 1학기 각 전교 59등과 121등을 기록했는데, 다음 학기에 전교 5등과 2등으로 성적이 수직상승한 뒤 2학년 1학기에는 각 문·이과 전교 1등에 오른다. 그러나 같은 기간 이들의 학원 및 모의고사 성적은 최상위권인 정기고사 수준으로 상승하지 않았다. 특히, 정기고사에서 암기가 어려운 서술형 문제는 풀지조차 않은 점도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또 계산이 필요한 물리 문제에 있어 풀이과정이 없었음에도 만점을 맞았고, 시험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정답을 적어둔 점 등도 판단의 근거로 고려됐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그 딸들이 공모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소사실 전부를 합리적 의심 없이 모두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범행은 2학기 이상 은밀하게 이뤄졌다”며 “숙명여고에 대한 업무방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대학입시와 직결된 중요한 절차로 사회적 관심이 높은 고등학교 내부 성적 처리 절차와 관련해 숙명여고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도 투명성과 공정성에 있어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게 됐다”고 A씨를 질책했다.
이어 “국민의 교육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고, 성실히 교육에 종사해온 다른 교사들의 사기도 손상됐음에도 피고인은 혐의 일체를 부인하면서 증거 인멸한 것으로 보이는 의심스러운 정황도 있어 중한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대학입시에 있어 고등학교 내부 정기고사의 위상이 높아졌음에도 시행과정에서 성적처리를 공정하게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것도 이 사건이 벌어진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며 “쌍둥이 딸들이 학적을 갖기 어렵게 됐고, 학생으로서 일상생활도 못하게 되는 등 피고인이 가장 원하지 않는 결과가 발생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숙명여고 졸업생 6명이 방청석에서 옛 스승이었던 A씨의 재판을 지켜보기도 했다.
A씨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교무부장으로 재직하며 시험 답안을 유출해 학교 성적평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징계위원회와 재심의를 거쳐 파면 조치 당했다. 쌍둥이 자매 역시 성적을 0점으로 재산정했고 퇴학 처리됐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양심을 어기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쌍둥이 자매들 역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아버지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들은 시험 후 정답이 정정된 문제를 틀린 것과 자매 간 동일한 오답을 적어낸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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