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아빠, 아빠, 귀가 자꾸 윙윙거려요.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지난 1998년 5월 군 제대 후 강문상씨(당시 22세·이하 문상씨)는 '마음의 병'을 앓았다. 환청에 시달리고 환시를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문상씨가 홀로 무엇을 듣고 보는지 알 수 없던 부모 속은 타들어갔다. 어느 날 문상씨는 부모에게 소리쳤다. "당신들은 나의 친부모가 아니야! 우리 부모님 어디 숨겨 놓았어!"
문상씨 부모는 병원에서 친자 확인까지 해줬으나 소용 없었다. 그가 백주대낮에 흉기를 들고 집 주변을 배회해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벌어졌다. 조현병((調絃病). 문상씨가 의료기관 신경정신과에서 진단 받은 병명이다. 강길수(74)·박예서(71) 부부는 막내아들인 문상씨의 병명을 확인하고서 '조현병'의 의미를 처음으로 알았다고 한다.
"멀쩡한 녀석도 아니고, 그 힘겹고 외로운 '마음의 병'을 달고 산다는 게 가장 걱정 됩니다. 어쩌자고 집을 나갔는지, 그 녀석을 돌볼 사람은 있는 건지… 억장이 무너집니다."
◇실종된 지 6078일째 되는 날…"집 한 채 해줄 형편 되는데"
강길수씨는 지난 3일 <뉴스1>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날은 문상씨가 실종된 지 6078일째 되는 날이다. 강씨 부부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틴 나날이다.
이들 부부가 거주하는 관악구 소재 다세대주택 꼭대기층인 3층에는 막내아들의 자취가 발견된다. 부부는 문상씨가 소지하던 지갑과 학생증, 군 전역증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줬다. 그 물품들은 문상씨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 같았다.
학생증 속 문상씨는 평범한 20대 청년의 모습이었다. 강씨 부부가 기억하는 아들은 여전히 20대 청춘이다. 그사이 큰아들은 결혼했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 부부는 "만약 '살아있다면' 문상이는 지금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곤 한다.
"실종된 지 17년이 지났으니까, 문상이 나이도 40대 초반쯤 됐겠네요. 그 애기 같은 녀석이 벌써 중년이라니. 생전 여자 친구 한 번 소개해 주지 않은 녀석이라 결혼은 했는지 모르겠어요. 만약 돌아온다면 장가부터 보내려고 합니다. 집 한 채 해줄 형편은 충분히 되는데, 왜 돌아오지 않는지…."(강길수 씨)
◇'월드컵 4강 신화' 이룩한 2002년, 집밖 나선 후 돌아오지 않아
문상씨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을 유난히 잘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적성을 살려 동국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월남전 참전 용사였던 부친을 닮아 성격은 고지식할 만큼 강직했다고 한다.
너무 닮아서일까, 부친과 부딪히곤 했다. 문상씨 군 제대 후 두 사람 간 다툼은 빈번해졌다. 문상씨가 "전공을 바꾸고 싶다"며 대학입학시험을 다시 보겠다고 했고, 부친인 강길수씨는 "어느 세월에 공부해서 다시 시험을 보느냐"고 반대했기 때문이다.
문상씨가 '마음의 병' 증상을 보인 것은 그 무렵이다. 종일 방에 앉아 게임만 했고 밖을 나가지 않았다. 강씨가 보양식을 사주고 함께 운동을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에게 고통스럽게 빠져들던 문상씨의 증세는 점점 나빠졌고 격렬해졌다.
부친과 다투던 문상씨는 돌연 흉기를 들고 집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말리던 강씨의 팔에는 가느다랗게 그어진 자국이 남았다. 두 사람은 물리적인 상처보다 정신적인 아픔에 더 괴로워했다.
"난동을 부리던 아들이 정신을 차리고 나면 엄청난 죄의식에 빠져 있었어요. 자신이 아빠에게 왜 그랬을까,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런 문상이를 보면 남편 마음도 썩어 문드러져 갔죠. 그래도 그때는 문상이를 볼 수 있었으니, 지금보다는 나았던 것 같네요."(박예서씨)
강씨 부부는 2002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해 대학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해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음의 병'과 싸우고 있던 아들 문상씨에게 ‘4강 신화’의 희망적인 기운은 결국 닿지 않았다.
그해 11월 12일 저녁 문상씨는 문을 열고 집밖을 나섰다. 얇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강씨 부부는 '잠시 나가 담배를 피우려는 구나' 짐작했다. TV 뉴스에서는 "2002년 '첫 추위'가 왔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2002년 첫 추위가 온 11월12일, 문상씨는 집을 나선 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실종 신고를 내고 언론 인터뷰를 아무리 해도 문상이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네요. 실종되고 얼마 안 돼 경찰이 '문상이를 봤다'는 제보를 접수해 얼마나 놀랐는지. 그 자리에서 부산 해운대까지 내려갔는데 제보자는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더니 나타나지 않았어요. 노숙자들이 모인 서울역을 샅샅이 뒤졌고 한강 다리 밑까지 내려가 찾았어요. 살아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꿈에서도 문상이가 보이지 않아요."(강길수씨)
◇"모든 사람이 너로 보인다…'보고 싶었어'라고 말하고 싶었어"
건설 자재 매장을 운영하던 강씨 부부는 충남 당진시에 3769㎡(약 1140평) 규모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현재 시세로는 1억원이 조금 웃돈다고 한다. 아들 문상씨가 돌아오면, 결혼 비용으로 쓰려고 간직하고 있는 땅이다. 땅의 실질적인 소유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문상씨가 실종된 지 6080일째 되는 날이 됐다. 그의 어머니 박예서씨는 막내아들에게 여전히 묻고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는 사람들도 다 너(문상씨)로 보였어. 그래서 순간순간 마음이 뛰고 가슴이 울리고 그랬어. 가슴이 울릴 때마다 너를 진짜 만나서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고 싶구나. 내 아들아, 어디에 있니."(박예서씨 일기장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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