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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김정은 벤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21 17:26

수정 2019.07.21 17:26

지난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때다. 갑자기 카메라 셔터가 빗발쳤다.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정장 차림 12명의 요원들이 검은 리무진을 '학익진(鶴翼陣·학이 날개를 펼친) 형태'로 둘러싸고 뛸 때였다. 물론 차 안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있었다.

당시 김정은이 탄 차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신형 모델인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 세계 최고 수준 의전차량으로 연간 8~10대만 제작된다.
수류탄 공격에도 끄떡없는 방탄차로 화학가스에도 버틸 수 있도록 산소공급장치가 갖춰져 있다.

'김정은 벤츠'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대북 수출이 금지된 사치품에 해당한다. 이는 북한이 국제 감시망을 뚫고 밀수했다는 얘기다. 미국 민간단체인 선진국방연구센터는 지난주 북한이 '밀수루트'를 이용해 핵·미사일 부품까지 반입하는 게 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센터의 '김정은 벤츠' 추적경로에 따르면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등을 거치는 '국제화물 세탁망'이 동원된 흔적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북한이 왜 이런 복잡한 환적을 통해 고가 차량을 반입하려 했을까. 한 탈북자는 김정은이 자동차광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수집해 놓은 고급 차량이 벤츠 외에 롤스로이스 팬텀 등 100여대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그래도 미심쩍던 차에 얼마 전 애나 파이필드 워싱턴포스트 베이징지국장이 펴낸 김정은 평전 '마지막 계승자'(도서출판 프리뷰 간)를 읽고 궁금증이 많이 해소됐다.

10여차례 북한을 현지 취재한 저자는 학익진식 인간장벽 경호는 미국 영화 '사선에서'(In the Line of Fire)를 본뜬 아이디어라고 했다.
어렸을 적 김정은이 명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당시 비밀요원으로 분한 이 영화를 봤다면서다. 실제로 이스트우드는 다른 요원들과 함께 대통령 차를 에워싸고 달리는 장면을 연기했다.
그의 취재가 맞다면 김정은의 '벤츠 사랑' 이면엔 테러위협과 '레짐 체인지'(정권교체)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고 봐야겠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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