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박지현의 아트월드] 미술 '무용'에 빠지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27 22:50

수정 2019.07.27 22:50

이번 여름에도 현대미술은 무용에 흠뻑 빠졌다.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하나 없다고 하는 이 세계에서 늘 새로움을 찾기 위한 현대미술의 시도가 무용에 닿은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수많은 작가들이 매년 무용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이제 이종 간의 콜래보레이션도 식상하다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형화된 예술 장르의 경계에서 서로를 오마주하고 맞닿으며 중첩되고자 하는 시도는 여전히 관객에게 또 다른 낯설음과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뉴욕과 대한민국 서울에서 무용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미술관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정적인 미술관에서 역동적인 춤의 흔적들을 만나보자.

■뉴욕 휘트니 비엔날레 2019 '발레 킹크-마스터 앤드 폼'
미국 뉴욕시 맨해튼 웨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휘트니미술관은 미국의 철도왕 밴더빌트의 손녀였던 조각가 거투르드 밴더빌트 휘트니가 유럽 작가들의 작품만 전시해 온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행보에 반발해 미국 미술의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1930년 설립한 미술관이다.

1931년 개관 후 이듬해인 1932년부터 지금까지 이 미술관은 2년마다 꾸준히 미국의 작가들을 조명하는 휘트니 비엔날레를 진행해 왔다. 지난 5월 17일부터 시작된 올해 비엔날레에는 제인 파네타와 루제코 호클리가 선정한 작가 75명의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공개된다.

브렌단 페르난데스(Brendan Fernandes) /사진=뉴욕타임스
브렌단 페르난데스(Brendan Fernandes) /사진=뉴욕타임스

이 가운데 뉴욕타임스가 주목한 이는 39세의 젊은 작가 브렌단 페르난데스(Brendan Fernandes)다.

그가 이번 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마스터 앤드 폼(Master and Form)'으로 밧줄과 정글짐 또는 새장의 형태를 닮은 다섯개의 설치 구조물로 구성돼 있다.

이 작품의 완성은 무용수들을 통해 이뤄진다. 일정한 박자에 맞춰 등장하는 무용수들은 이 구조물들의 옆을 지나가거나 통과하는 와중 발레의 다양한 기본 동작들을 절도 있게 선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이 구조물들은 무용수들의 발레 동작을 돕는 발레바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동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작품 속의 무용수는 발레 동작을 선보이는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 지구력과 자제력의 한계를 시험하게 된다.

휘트니 비엔날레 2019에 전시 중인 '마스터 앤드 폼(Master and Form)' 퍼포먼스 장면 /사진=뉴욕타임스
휘트니 비엔날레 2019에 전시 중인 '마스터 앤드 폼(Master and Form)' 퍼포먼스 장면 /사진=뉴욕타임스

이 작품은 페르난데스가 선보여온 '발레킹크(Ballet Kink·뒤틀어진 발레)' 시리즈 중 하나로 그는 지난 15년간 시각 예술과 춤을 융합시킨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페르난데스는 "무용가들이 스스로의 동작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없는 '지배와 복종이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무용수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 구조물은 때때로 관객들이 찰나의 회화적 순간들을 포착하게끔 한다. 무용수들의 신체 동작 하나 하나가 검은 사각형 정글짐 프레임 속에 순간 순간 갇힌다. 뜻대로 되지 않는 동작 속에 무용수들의 뒤틀린 심리 상태도 순간의 프레임 안에 드러난다.

휘트니 비엔날레 2019에 전시 중인 '마스터 앤드 폼(Master and Form)' 퍼포먼스 장면 /사진=뉴욕타임스
휘트니 비엔날레 2019에 전시 중인 '마스터 앤드 폼(Master and Form)' 퍼포먼스 장면 /사진=뉴욕타임스

'발레 킹크' 시리즈의 모티브는 그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기인했다. 어릴적 발레리노를 꿈꿨던 그의 꿈이 부상으로 좌절된 후 대학에서 시각미술을 전공한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구속 속에서도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다고 밝혔다. 또 그는 무용을 수련하는 과정 속에서 공공연히 드러났던 절제와 자유 속 사디즘과 마조히즘적인 성향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비엔날레가 끝나는 9월 22일까지 미술관 5층에 자리잡은 그의 작품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 5시부터 9시 사이 퍼포먼스가 진행될 예정이다. 9월에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12시부터 4시 사이 퍼포먼스가 추가로 진행된다.

■서울시립미술관-'안은미래'展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진행중인 '안은미래'展에서 안무가 안은미가 관객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진행중인 '안은미래'展에서 안무가 안은미가 관객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서울시립미술관

페르난데스가 2019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발레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 동안 한국의 서울시립미술관(SEMA) 서소문본관에서는 현대무용가 안은미를 모티브로 한 전시 '안은미래 Known Future'전이 펼쳐진다.

1988년 안은미컴퍼니를 창단한지 30주년을 맞은 그는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질서와 무질서'에 대한 질문을 늘 던져왔다. 보는 무용을 넘어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무용, 고도의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현대 무용에 한국의 아줌마와 아저씨의 몸 동작을 집어넣고 때로는 그들을 무용수로 내세워 한국의 춤사위로 유럽 곳곳에 선보이며 '아시아의 피나 바우쉬'라는 찬사도 받았다.

서울시립미술관 '안은미래'展 전시관 전경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안은미래'展 전시관 전경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이번 전시에서도 무용을 넘어선 그의 다양한 예술적 다양한 시도가 하나 하나 펼쳐진다.

전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공간은 공연기록과 삶의 에피소드 등 안은미의 활동 이력을 비선형적 방식으로 구성한 연대표 회화를 중심으로 안은미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두 번째 공간에는 안은미 작업을 관통하는 요소들을 집대성했다. 과거 공연에서 사용한 오브제를 활용해 재생산한 설치 작품과 안은미의 오랜 협업자 장영규가 제작한 사운드 그리고 형형색색의 조명 아래 빛나는 무대가 관람객을 맞는다.
마지막 공간은 아카이브룸으로 과거 공연의 사운드, 의상, 디자인 자료 등으로 구성된다.

서울시립미술관 '안은미래'展 전시관 전경/사진=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안은미래'展 전시관 전경/사진=서울시립미술관

이번 전시의 핵심은 전시실 중앙에 설치된 무대 공간 '이승/저승'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와 강연 프로그램 '안은미야'다.
사회디자인학교 미지행, 국악인 박범태, 현대무용의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소리꾼 이희문, 탭댄서 조성호가 협업자로 참여해 '몸춤/ 눈춤/ 입춤'으로 구성한 댄스 레슨 프로그램 및 공연 리허설, 인문학 강연 등을 진행한다. 전시는 9월 29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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