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대선 경선 주자들은 일제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이 최근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들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공격에 나섰다. 이와 더불어 해묵은 논제였으나 수면 아래 있었던 총기 규제 이슈 또한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증오는 우리나라에 발붙일 곳이 없다"며 범인들의 정신적인 문제를 거론하는 등 사건과 거리를 두는 데 주력했다.
4일(현지시간) CNN과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지난 3일 오전 10시30분 텍사스주 엘패소 쇼핑단지 내 월마트에서 21살 백인 남성인 패트릭 크루시어스가 총기를 난사해 20여명이 숨지고 26명이 부상을 당한데 이어 13시간 후인 4일 새벽 1시께 오하이오주 데이턴 오리건 지구에서 24세 백인 남성인 코너 베츠가 총기를 난사해 용의자 자신을 포함해 10명이 숨지고 26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용의자 크루시어스의 범행 동기가 '인종 혐오'인 것으로 알려졌다. 크루시어스는 범행 전 온라인 커뮤니티 '에이트 챈(8chan)'에 이번 공격은 '히스패닉의 텍사스 침공에 대한 대응'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익명으로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행정당국은 연이은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국내 테러'로 규정하고 '혐오 범죄' 등의 혐의를 적용했지만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주의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고향이 앨패소인 민주당의 베토 오로크 전 하원의원은 4일 CNN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인정한 인종차별주의자이고 이 나라에서 더 많은 인종주의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경선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CNN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증거가 우리가 인종주의자이자 백인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외국인 혐오자 대통령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 이민자 침략 발언이 총기 난사 사건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어야 하고 얼마나 많은 지역 사회가 찢겨야 하는가"라며 "우리가 행동에 나서 총기 폭력을 끝낼 시간이 됐다. 우리는 미국총기협회(NRA)와 총기 제작자들을 이길 수 있다"고 밝혔다. 카멀라 해리스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은 "총기 폭력이라는 전염병을 끝내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자신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임기 시작 100일 안에 총기 규제 행정 명령을 내리겠다고 공약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정부는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실제로 많은 일을 해냈다"면서도 "그러나 아마도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수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계속되고 있다"며 "우리는 이 문제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희생자 애도를 위한 조기 게양을 지시하고 5일 오전 10시에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공식성명에 총기 규제에 대한 언급이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현지 언론들은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공화당은 총기 소유가 미국 헌법에 보장된 권리라는 이유로 규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과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규제를 추진해왔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에 성공하자 곧바로 헌법에 보장된 총기 소유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정신지체 장애인의 총기 소유를 제한한 규제를 폐지했다. 이번 총기 난사 사건 직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총기 규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또 한편 총기난사가 일어나던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뉴저지주에 있는 골프클럽에 머무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대행은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총격 용의자들에 대해 '병자'라고 지칭한 후 "트럼프 대통령도 이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으며 이것을 정치적 이슈로 만들려는 것은 어떤 이로움도 없다. 이것은 사회적 문제다"라고 옹호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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