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관객'의 티켓파워
역사·정치·종교·젠더 등 민감한 주제 영화..운명 좌우할 만큼 영향력 발휘하며 존재감
바울·교회오빠 등 소리소문 없이 흥행
'100억 대작' 나랏말싸미·자전차왕 엄복동..역사왜곡·도둑 등 논란 일면서 발길 끊겨
못 봐도 티켓은 산다는 '영혼 보내기'로 손익분기점 넘긴 걸캅스와 대조적
역사·정치·종교·젠더 등 민감한 주제 영화..운명 좌우할 만큼 영향력 발휘하며 존재감
바울·교회오빠 등 소리소문 없이 흥행
'100억 대작' 나랏말싸미·자전차왕 엄복동..역사왜곡·도둑 등 논란 일면서 발길 끊겨
못 봐도 티켓은 산다는 '영혼 보내기'로 손익분기점 넘긴 걸캅스와 대조적
■애니부터 정치다큐까지 "끼리끼리" 본다
집단 관객은 SNS를 기반으로 문화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소비하며 새로운 담론과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이들 중 일명 '덕후' 관객의 힘이 감지된 것은 2015년, 9월. 일본 애니메이션 '러브 라이브! 더 스쿨 아이돌 무비'가 고작 66개관에서 소리 소문 없이 개봉했을 때다. 이 영화는 평균 좌석 점유율 42%를 기록하면서 13만명을 동원했다. 상영일 중 30%가 대관 상영(좌석점유율 100%)이었다. 사회적 관심 속에 상영 중인 다큐 '김복동'이 7만명을 모았으니, '러브 라이브!'가 얼마나 많은 관객을 모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기독교 관련 영화도 최근 2년간 안정적인 흥행을 기록 중이다. 2018년 개봉한 '바울'은 27만명, 올 5월 개봉작 '교회오빠'는 10만명을, 6월 개봉한 애니메이션 '천로역정:천국을 찾아서'는 29만명을 동원했다. '천로역정'이 매 여름 찾아오는 '명탐정 코난' 시리즈보다 9만명을 더 모았다.
정치 다큐의 선전에서도 집단 관객의 힘을 엿볼 수 있다. 최근 3년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룬 '노무현입니다'(2017), MB 추적기 '저수지 게임'(2017), 2012 대선 투표 조작에 대한 의심을 담은 '더 플랜'(2017), 세월호 관련 다큐 '그날, 바다'(2018) 그리고 '시민 노무현'(2019) 등이 개봉했다. 이들 작품의 경우 관객 수보다 스크린 수를 주목할 만하다. 보통 다큐멘터리는 평균 33개관으로 전체영화의 1/3에 불과한데, 이 영화들은 최다 775개관에서 최소 152개관을 확보했다. '노무현입니다'는 역대 다큐멘터리 관객수 3위(185만명), 스크린수 2위(775개)를 기록했다.
천만 영화에는 일시적 '덕후 관객'이 존재한다. 'N차 관람'이 그 예로, 영화진흥위원회의 '2018 영화소비자 행태 조사'(만13세~69세 남녀)에 따르면 N차 관람 경험은 40%로, 연령대가 낮을수록 높게 나타났다.
■이슈몰이 집단 관객, 영화 운명 좌우
이슈몰이 집단 관객도 늘었다. 이들은 온라인의 확산력에 힘입어 영화 자체의 완성도보다 더 많은 흥행을 이끌어 내거나 반대로 영화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지난 2월, 100억대 제작비가 투입된 '자전차왕 엄복동'(2019)은 '자전차 도둑왕' 엄복동으로 소문나면서 17만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역시 100억원대인 송강호 주연작 '나라말싸미'도 역사왜곡 논란에 95만명이 보는 데 그쳤다. 당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세종이라는 고독한 천재를 향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호평했음에도 분위기 반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 극장 관계자는 "'자전차왕 엄복동'은 개봉 전 인지도가 높아 예매율과 좌석점유율이 상승세를 긋다가 논란 이후 확 떨어졌다"고 기억했다. '나랏말싸미'는 "역사왜곡 논란이 일면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감지됐다"고 부연했다. 반대로 '젠더 이슈' 덕분에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도 있다. 지난 5월 개봉한 '걸캅스'가 그 사례. 두 여성 경찰이 주인공인 '걸캅스' 콘셉트를 못마땅해 한 '페미니즘 혐오' 남성 관객들이 별점 테러를 가하자 일부 여성 관객이 이에 맞서 '영혼 보내기'(영화 관람 여부를 떠나 해당 영화 티켓 구매하기)를 하면서 화제가 됐고,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집단 관객, 한계와 가능성 사이
그렇다면 집단 관객의 영향력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형호 영화산업분석가는 절대 관객수의 증가와 관련 있다고 봤다. 영진위 '2018 영화소비자 행태 조사'에서 1인당 영화 연 평균 관람 횟수는 6.7회로 나타났다. 김형호 영화산업분석가는 "점점 10편 이하 보는 일반 관객 비율이 늘고 있다. 일반 관객은 여론몰이 집단 관객의 영향을 더 받을 수밖에 없다. 격월로 1편 보는데 굳이 논란 딱지가 붙은 영화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영화 정보를 온라인이나 주변인에게 얻는 소비자 행태도 빼놓을 수 없다. 영진위 조사에서 극장 중심 관람자(극장 영화 60% 초과)는 25~29세 남성, 30~34세 여성, 50~59세 여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19~29세 남성은 주로 '인터넷 포털', '주변인', '인터넷 SNS' 등으로 영화 정보를 검색했다. 30~34세 여성은 잡지, 신문도 참조했으나 '주변인'과 '인터넷 포털'을 많이 애용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인플루언스들의 폐해를 우려했다. 그는 "시대의 흐름과 가장 밀접한 장르이자 전 세대와 소통하는 유일한 대중문화가 영화"라며 "영화가 공론장의 역할을 하고 있어 인플루언스들의 타깃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문제는 이들이 잘못된 프레임으로 영화를 매도해 해당 영화가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를 잃는 것이다. '군함도' '나랏말싸미'가 대표 사례로, 그들에 대한 제어 장치가 없어 영화사 입장에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모험적인 시도를 차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화계에서는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급증하는 것과 관련, 기획 단계부터 자기검열하는 게 최선이라는 분위기다. 한 시나리오 작가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하지만, 관객 반응 또한 신경 쓸 수밖에 없다"며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수정을 요구하면 대체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한 영화 마케터도 "대중문화 전반에서 능동적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변해가는 관객 눈높이나 정서에 예민하게 발맞추고 소통하는 게 어렵지만,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형호 영화산업분석가는 집단 관객의 시장성에 주목했다. 그는 "특정 집단관객만 사로잡아도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흥행이 가능해졌다"며 "관객 모두를 포괄하는 대작만 제작하기보다 다양한 중소 규모 영화를 제작하는 게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영화 소비자들이 일정 편수를 꾸준히 소비하고 있다. 그들의 니즈를 극장에서 채워줘야 IPTV등 다른 매체로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