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32·SK)과 제리 샌즈(32·키움)는 동갑나기다. 굳이 따지자면 ‘빠른 87년 생’ 최정이 형이다. 최정의 생일은 2월 28일, 샌즈는 9월 28일. 이 둘이 치열한 홈런왕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26일 현재 홈런 수는 샌즈가 26개로 최정보다 두 개 많다.
6월까지만 해도 최정의 페이스가 더 빨랐다. 5월 말 현재 최정과 샌즈는 각각 10개씩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었다. 6월 들어 최정이 10개의 홈런을 몰아쳤다. 샌즈는 5개에 그쳤다. 홈런 수에서 5개의 격차는 상당하다.
최정이 7월 2개의 아치를 그리며 주춤한 사이 샌즈는 6개를 추가했다. 22개와 21개 이때부터 박빙의 레이스가 펼쳐졌다. 여전히 최정의 1개차 리드. 샌즈가 13일 LG전서 시즌 22호 홈런을 터트렸다. 다시 원점.
무게 추는 바로 다음 날 샌즈 쪽으로 기울었다. 샌즈는 LG 투수들을 상대로 두 개의 홈런을 거푸 쏘아 올렸다. 최정은 답답하게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다. 샌즈는 17일 한화와의 경기서 25호 홈런을 날렸다. 처음으로 최정과의 간격이 3개 차로 벌어졌다.
최정이 20일 롯데전서 23호를 때리자 샌즈는 다음 날 KIA전서 26호로 응답했다. 최정과의 홈런 수 간격이 좁아지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다시 3개 차. 이번엔 최정이 반격에 나섰다.
23일 SK와 한화의 인천 문학구장 경기. 한화 외국인 투수 워윅 서폴드가 1회 말 최정을 맞아 던진 초구는 변화구였다. 최정이라는 이름에 눌린 느낌이었다. 빠른 공 투수들은 1회 자신의 구위를 믿고 직구를 많이 던진다. 중반으로 갈수록 변화구의 비중이 늘어나지만.
최정은 서폴드의 초구 슬라이더를 두들겨 좌측 담장을 넘겼다. 시즌 24호. 20일 롯데 전에 이어 3일 만에 홈런포를 재가동했다. 1위 샌즈와 공동 2위 최정의 간격은 2개 차로 좁혀졌다. 두 개면 한 경기 만에도 가지런해질 수 있다. 올 시즌 최정은 세 차례나 멀티 홈런 경기를 가졌다. 세 개면 바로 역전이다.
최정은 시즌 24호 홈런으로 통산 330개 대포를 기록했다. KBO리그 역대를 통틀어 단독 5위. 올 시즌 은퇴한 이범호(전 KIA)를 한 개차로 제쳤다. 그의 앞에는 이호준(337개) 장종훈(340개) 양준혁(351개) 이승엽(467개) 네 명 뿐이다. 서둘러 가면 올 해 안이라도 이호준을 넘어설 수 있다.
샌즈는 홈런뿐 아니라 타점(104개) 장타율(0.991) 1위에도 올라 있다. 외국인 선수 가운데 가장 적은 연봉(50만 달러)을 받으면서 가장 높은 효율을 자랑하고 있다. 시즌 초반만 해도 홈런 레이스 경쟁에 샌즈가 뛰어들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는 적었다.
3월 키움의 8경기서 샌즈는 홈런 손맛을 보지 못했다. 4월 들어서도 5경기서 샌즈의 홈런포는 잠잠했다. 4월 9일 KT전서 첫 손맛을 보며 비로소 기지개를 켰다. 이후 뚜렷한 몰아치기는 없었지만 꾸준히 홈런포를 가동시켰다. 마침내 8월 14일 최정을 제치고 홈런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최정은 2016년과 2017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체득했다. 샌즈에겐 첫 경험이다. 갈수록 심리적 압박감이 더할 것이다. 공동 2위 박병호(키움)나 4위 로맥(SK·23개) 등 다른 추격자들도 만만찮다.
박병호는 8월 들어 6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4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한 무시할 수 없는 경력도 있다. 홈런왕 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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